[기고] 행정학도의 눈으로 또 다른 신림동, 봉천동을 바라보다
[매일일보]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한 여성을 쫓아가 자택에 침입하려 한 ‘신림동 강간 미수범’ 영상 속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인근 봉천동에서도 한 여성이 거주하는 반지하 원룸 창문으로 집안을 훔쳐본 남성의 CCTV 영상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 보도에 따르면 봉천동 피해 여성이 112 신고를 한 뒤 30여 시간이 지나서야 사건을 맡은 경찰이 현장을 찾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상 속 피해자가 ‘나’, ‘나의 친구’, ‘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분노와 두려움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사건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표출하는 분노가 제대로 수렴될 수 있는지는 많은 의문이 든다.
신림동, 봉천동과 같은 동단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해당 구역의 파출소, 지구대의 관할이다. 지역 민원·순찰 업무를 수행하며 주민과 가장 가깝게 소통해야 하지만, 현재의 체제로서는 그 취지를 실현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휘 부처의 복잡화와 관료화, 획일적인 업무지시는 치안행정의 자율성과 연속성을 담보하지 못하며 이는 결국 주민의 피해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자치경찰제’는 자율적인 행정행위를 통하여 주민생활 중심의 경찰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데 의의를 지닌다. 1991년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자치경찰제 도입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 출범 이후 ‘광역단위 자치경찰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국회에 제출된 경찰법 전부개정안은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의 긴밀한 연계에 근거한 자치경찰의 사무를 골자로 하고 있다.
연이은 여성 대상 범죄로 불안감이 높아진 가운데 서울시가 여성 1인 가구와 점포에 안전 강화 대책을 내놨다. 서울시는 여성 거주 비율이 높은 양천구와 관악구 두 곳을 시범사업지로 선정하고, 여성 1인이 거주하는 집과 점포에 문열림센서, 휴대용 비상벨 등의 안전장치 설치 계획을 밝혔다.
아직 자치경찰제가 시행된 상태는 아니지만, 여성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주민 밀착형 치안활동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사건의 발생 후에 추진된 늦은 대응이라는 아쉬운 비판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Mend the barn after the horse is stolen)’는 말처럼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를 고친 좋은 선례로 발돋움해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영향력이 퍼지길 기대한다.
행정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다. 매일매일 피부로 느끼는 삶의 질을 높여줄 요소는 내가 사는 마을의 행정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압축적 근대화의 영향으로 효율성을 우선시해 발전되어 온 측면이 크다. 이를테면 충분한 합의 없이 제주도지사가 인사권자로 출범시킨 ‘제주자치경찰’이 그렇다. 무늬만 자치경찰,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오명을 벗고 균질화된 행정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주장한 ‘위험사회’는 현대사회의 민낯이다. 불안이 만연한 하루를 살아가는 주민에게 안전은 최우선으로 충족되어야 할 행정 요소이다. 자치경찰제에 대한 많은 우려와 정치적 논쟁이 있지만, 제도의 이념이 되는 지방자치의 가치를 상기시켜볼 필요가 있는 오늘이다.
경희대 행정학과 3학년 최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