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휘규] 사람은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 이러한 소통에 사용되는 언어는 대화나 문자의 형태로 표현된다. 모든 인간의 행동은 이처럼 언어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언어가 갖는 힘은 막강하다. 산업혁명 이후 제대로 된 국가사회 차원의 의무교육 체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글을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언어를 안다는 것은 지식이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과거 유럽 귀족들이 최소 2~3개의 외국어를 익히려고 했는데, 이는 귀족으로서 그 정도의 자질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부와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지배계급인 양반들만 제대로 된 언어를 익혔다. 한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일반인들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제대로 글을 쓰지는 못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사실 조선시대에는 각종 부정부패와 극심한 빈곤으로 기초적인 국가차원의 교육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일부 식자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백성들이 문맹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일반 국민들의 문맹률은 상당히 높았다, 1930년 10월에 실시된 ‘조선국세조사’의 문맹율을 조사통계를 확인해 보면, 국민의 77.7%인 1588만여명이 조선말, 일본말에 상관없이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다. 1931년 동아일보의 기사를 살펴보면 당시 미국 뉴욕의 문맹률은 4.5%였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우리의 문맹률이 높았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문맹률은 해방이후 급격하게 낮아져, 현재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거의 0%에 가깝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몇 가지 언어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언어적 잔재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우리말의 대부분 단어들이 한자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오랜 기간 한자와 병행되어 사용돼 왔다. 물론 최근에는 단어의 한자의미나 표현에 대하여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래된 한자표현은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표현과 단어들도 많이 섞인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도 사회 일부분에는 이러한 일본어의 잔재가 일부 남아있다. 이런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어의 잔재는 특히 건설현장, 군대, 법률관련 분야 등에 많이 남아있는데 이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이처럼 과거의 오래된 한자표현과 일제 강점기의 언어적 잔재로 인해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분야가 있다. 법률분야가 가장 대표적이다. 예들 들어 상법을 살펴보면 이런 표현들이 나온다. (제55조) ~금전을 체당(替當)하였을 때에는~, (제53조) ~낙부(諾否)의 통지를~, (제62조) ~물건의 임치(任置)를 받은 경우에는~ 등등. 요즘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다보니, 일반인들에게는 이런 표현이 낯설 따름이다. 특히 법전에는 이런 식의 오래된 한자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막상 뜻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일반적인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55조)의 표현을 국어사전에 있는 그대로 바꾸면 ‘~돈을 나중에 돌려받기로 하고 돈이나 값나가는 물건 따위를 대신 주었을 때에는~’이 된다. 다른 표현들도 마찬가지이다. (제53조)는 ‘허락하는지 거절하는지에 대하여 알려주는~’, (제62조)의 표현은 ‘~물건을 맡아 보관하여 주기로 한 경우에는~’으로 바꿀 수 있다. 이 정도 표현이면 중학생 정도의 언어 수준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보인다.
한 번에 법전의 법률표현과 단어를 모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오래된 한자표현이나 일본식 한자표현이 들어간 어려운 문장이라도, 법리와 기존 판례에 혼돈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해당분야 종사자들도 의도적인 동참도 필요해 보인다. 일부러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섞어 글을 어렵게 쓰지 말고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우리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해 주면 정말 고마울 것이다.
한번은 건설 엔지니어로 현장에서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분이 ‘가다와꾸(거푸집)’, ‘아시바(비계)’ 등과 같은 일본어를 많이 사용하기에 이유를 물어보았다. 약간은 쑥스러워 하면서 하는 대답이 ‘이런 단어를 섞어 써야 짬(?)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즉 나도 이정도 단어를 알 정도로 ‘이 분야의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은근히 내 비치는 것이다. 그래야 좀 아는 척도 하고 무시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마 법조인들도 이런 웃기는 발상으로 어려운 한자용어나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해방 후 아무런 기반도 없이 백지의 상태에서 국가체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부분 일본의 것을 많이 참고했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해 보는 것이다 보니 누군가에게 배워야 했기에, 좋던 싫던 간에 일본의 그것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감안 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벌써 해방된 지 70년 이상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과거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다가올 해방 100주년에는 좀 더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