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노동 현장에 포퓰리즘은 배제돼야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정치에 있어 국민에게 의견을 묻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가가 단순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신념과 방향을 잃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라를 망칠 수 있다.
포퓰리즘(Populism)으로 불리는 이러한 정치행태는 본래의 목적보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확고한 정책적 가치관이나 합리성·경제성 등 기준 없이 대중들의 순간적 요구에 부응하기 때문에 결과보다 인기에 따른 지지율 확보에 더 민감하다.
최근 산업계에서도 이러한 정치행태와 비견되는 일이 종종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강업계의 ‘고로 조업중지’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미 충청남도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2고로를 상대로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최종 결정한 상태로, 경상북도와 전라남도 역시 같은 유권해석과 법리적용을 근거로 포스코에 조업정지 처분을 내릴 것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는 철강업계에서 행정심판 등 소송전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은 현재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 및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결과에 따라 행정소송도 불사할 방침이다.
포스코가 창립 51년째를 맞은 올해에서야 비로소 고로 블리더 개방이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이유로 조업정지 처분이 거론되는 것은, 결국 최근 환경문제가 계속 이슈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환경·에너지정책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 저감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와중에 환경단체의 요구에 부응하는 환경부의 유권해석과 지자체의 조업정지 처분은 철강업계에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블리더 개방 문제는 현재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서는 조업정지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 산업 기반이 최근 경제 침체로 인해 대부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아무런 대안 없이 내려진 처분이어서 철강업계가 받는 타격은 체감상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은 1870년대 러시아의 브나로드(Vnarod) 운동에서 비롯됐지만, 널리 알려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정권이 대중을 위한 선심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탄시키면서부터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페론정권 이후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철강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철강 산업이 명확하고 객관적인 수치적 근거 없이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불이익을 당한다면 경쟁력은 역주행하게 된다.
모르는 이들은 단지 10일 조업중지로 치부할 수 있지만, 고로의 가동중단은 냉연공장과 같은 하공정의 단순한 감산과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그 파급력과 손실은 여러 매체에서 알려졌듯이 결코 적지 않다.
이는 철강업계의 언론플레이로 치부해버릴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경쟁력을 갖고 있는 철강업계를 포퓰리즘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손실을 만회하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행정가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숫자 ‘10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제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모르는 국민은 없다. 또 철강 산업이 미세먼지의 공범으로 꼽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에바 페론이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을지 몰라도, 혹독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