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도기천 기자] 국내 최장수 워크아웃 기업으로 다섯 번째 매각이 진행 중인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의 매각 작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8월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인수에 속도를 내던 동부그룹-CXC 컨소시엄(이하 동부컨소시엄) 앞에 대우일렉의 우발채무 1100억원이 돌발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우일렉 ‘글로벌 큰 손’ 파슨에 패소
우발채무 1100억원 돌발변수 급부상
채권단·동부그룹 채무 떠넘기기 신경전
대우일렉은 지난달 28일 이란 유통업자 파슨과의 국제중재 판정 취소소송에서 패소했다. 대우 측은 파슨에 9808만 달러(약 1100억원)를 지급하라는 국제상공회의소(ICC) 법원의 판정을 취소하기 위해 소를 제기했으나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받은 것.앞서 지난 6월 파슨은 대우일렉을 상대로 ICC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 ‘대우일렉이 파슨에게 9808만달러를 지급하라’는 배상액 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이번 소송은 지난 2006년 이란 내 대우일렉 제품 독점 판매권자이던 파슨이 대우일렉 측으로부터 돌연 계약해지 통보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우일렉은 “파슨이 합의된 물량보다 적게 구매하면서 손실이 발생했다”며 파슨에 대한 지위를 박탈했다. 파슨은 이에 반발해 대우일렉을 ICC에 제소했다.관련업계에서는 이번 재판에서 대우일렉이 패소한 이유가 중재판정을 취소할 만한 뚜렷한 사유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대우일렉 측은 전액 취소는 아니더라도 일부 판정내용을 취소해 배상액을 감액해 보려는 속내였는데, 법원은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은 것.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대우일렉 인수에 최대변수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자칫 이번 판결로 인해 인수 우선협상자인 동부컨소시엄이 1100억원을 떠안게 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대우일렉 채권단은 동부컨소시엄과 ‘대우일렉 인수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당시 파슨과 관련된 손해배상액은 채권단이 책임지기로 약속했지만, 매수 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각서에 명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더구나 채권단은 파슨과 관련된 대우일렉 채무를 500억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파슨이 국내 법무법인에 관련 자문을 구한 뒤 채권단에 500억원을 배상금으로 요구한 바 있기 때문이다.채권단은 지난 5월 파슨 측에 합의금 명목으로 50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의하는 등 파슨 채무액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다. 현실적으로 파슨이 배상금 전액을 받아내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에서였지만 최근 판결은 예상을 뒤집었다.파슨 측은 ICC 판결로 당초 요구했던 500억원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파슨이 판정 집행을 신청하면 배상액 대부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대우일렉 측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를 준비하고 있지만 파슨은 이에 맞서 판정 집행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채권단으로선 500억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동부컨소시엄이 일부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문제는 인수자인 동부컨소시엄의 자금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동부컨소시엄은 3700억원을 인수가로 써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는데, 현재 동부그룹의 상황으로 볼 때 인수가를 채우기도 버거워 보인다.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동부그룹은 증권사와 은행 등에 주식담보대출을 신청하고 있다. 대출금액이 얼마인지 구체적인 사항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선 대우일렉 인수를 위한 ‘실탄’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더구나 동부컨소시엄은 리스크를 떠안기 어려운 재무적투자자(FI)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부그룹은 대우일렉 인수를 위해 지주회사 격인 동부CNI와 계열사들을 통해 1000억원 이상을 지원했고, KTB 프라이빗에쿼티(PE)와 CXC PE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따라서 인수자금 마련에 허덕이고 있는 동부가 추가로 1100억원의 위험부담을 안고 대우일렉을 인수하기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본계약 전까지 극적인 타결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이번 매각시도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동부 측은 현재 이행보증금 5%(약 185억원)를 납부한 상태며, 내달까지 대우일렉에 대한 상세 실사 작업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한편 대우일렉의 최대주주는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로 전체 지분의 57.4%를 보유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은 각각 5.37%, 6.79%의 지분을 갖고 있다.대우일렉 인수에는 2006년 인도의 비디오콘 컨소시엄, 2008년 모건스탠리 사모펀드(PE), 2009년 리플우드 컨소시엄, 2011년 이란 엔텍합그룹과 일렉트로룩스에 이어 최근 스웨덴 일렉트로룩스가 도전장을 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그동안 외국계 가전기업과 투자 자본들이 주로 관심을 보였는데, 국내기업인 동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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