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피의사실 공표와 ‘역지사지’의 교훈
경마중계식 특검 보도…구경할 땐 좋았는데 당하니 억울?
[매일일보] 집권 5년 내내 전직 대통령과 전직 총리를 포함한 야권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경마중계식 수사브리핑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 언론들 사이에서 정치적 효과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이명박정부가 내곡동 특검팀의 수사 활동 때문에 벙어리냉가슴을 앓고 있다.
대통령의 가족들이 잇따라 소환되면서 조사내용에 대한 특검팀의 일일 브리핑과 백브리핑 등을 통해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는 ‘피의사실 공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를 대놓고 비판할 수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 변호인이 특검팀에 시형씨에 대한 재소환과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무차별 소환을 자제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가 외압 논란에 휩싸인 바 있어 청와대 관계자의 입에서 관련 불만이 터져나올 경우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1일 한 매체와의 전화통화에서 “예상은 했지만 특검팀 수사 방식이 온당치 못하다”며, “중간수사 발표 외에는 피의사실을 얘기해서는 안 되는 기본마저 무시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靑, 내곡동 특검팀 수사 발표 방식에 불만 고조
외압 논란 우려에 공개비판 못해 ‘벙어리냉가슴’
이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특별히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어 냉가슴만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동일한 방식으로 명예살인을 당했던 상황을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해당 매체에 따르면 청와대는 특검수사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일방적인 내용이 마치 국민에게 사실처럼 오도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사안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는 김세욱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받은 진술마저 바깥으로 줄줄이 유출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당사자가 특검과 김 전 행정관 뿐인데 진술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결국 특검팀에서 흘린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또 시형씨가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으로부터 돈을 빌린 시점을 애초 검찰 진술과 달리 특검에서 수정한 사실이 알려지고, 이에 따라 계약 전반에 불법이 있던 것처럼 보도된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정 정당에서 선택된 특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적 수사를 예상했지만 해도 너무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는데, 특검의 브리핑 방식이 검찰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지사지’의 교훈은 역시 겪어봐야 알 수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