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프레디 머큐리의 절규

2019-06-27     송병형 기자
사진=더

“1986년에 절규하는 프레디. 나는 같은 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기업의 사회공헌 캠페인의 일환으로 열리고 있는 구족화가특별전시 참여작가 중 한 명인 박종관 작가의 말이다. 이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수일 밤을 샜던 필자에게 박종관 작가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전시 준비 도중 차가 반파됐을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전시에 참여할 만큼 굳센 의지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박종관 작가는 1986년 이라크 건설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 활짝 핀 청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구족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유년기부터 그의 꿈은 화가였다. 입상경력도 있었다.  그는 시련을 넘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썼다. 이제 그는 "긴 삶을 돌아 꿈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인 '프레디의 절규'는 이 같은 그의 인생역정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영국의 록 밴드 퀸은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감염으로 인해 1986년 라이브 활동을 중단했다. 박종관 작가는 자신과 같은 해 불운을 당한 프레디 머큐리의 당시 좌절과 마음 속 절규를 그림 속에 담았다. 박종관 작가의 작품 속 프레디의 모습은 퀸이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 시점인 1986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공연은 훗날 전설처럼 회자되는 공연이 되었지만 작가에게는 노래하는 프레디의 모습이 단순한 노래가 아닌 절규이자 절망을 외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나아가 비슷한 시기 사고로 절망에 빠져있던 자신의 모습과도 오버랩됐다. 

프레디 머큐리의 삶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인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일생 동안 수많은 상처와 고통에 시달렸지만 예술로 그 아픔을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이교도이자 뻐드렁니에 이민자였고, 성소수자에 약물중독자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당시만 해도 혐오의 대상이었던 에이즈 환자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이 두려운 사실을 감추려했지만 결국 1991년 공개적으로 이를 인정했다. 그가 죽기 하루 전이었다.

이번 구족화가특별전시에는 박종관 작가 외에도 김명기, 박 정, 오순이, 임경식 등 4명의 작가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신체적 장애로 인한 차별을 열정과 의지로 극복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림으로 승화시켜 왔다. 이들의 작품에는 그림으로 사회와 소통하며 무한한 창작 의지와 자유를 펼쳐낸 작가들의 삶이 녹아있다. 이들 역시 프레디 머큐리 못지 않은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