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2020-07-07 송병형 기자
지난 주 초 일본의 기습적인 경제보복 조치에 산업부로 대응창구를 일원화하겠다며 뒤로 빠져있던 청와대가 뒤늦게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움직임은 10일 열린다는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그룹 총수들 간 간담회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전면에 나서 한국에 대한 여론전을 주도했지만 문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진주만 공습’을 방불케 하는 일본의 경제공격에 무려 열흘이 지나서야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입을 여는 것이다. 게다가 그 간담회 준비를 위해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미리 대기업 총수들과 사전회동까지 한다니 단순히 ‘신중한 메시지 관리’라고 보기엔 대통령의 행보가 과하게 신중하다.
이러니 이미 일본의 보복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정부나 청와대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다. 김상조 실장은 정부가 미리 일본의 보복 리스트를 뽑아놓고 있었으며 일본이 가장 아픈 3곳을 찔러 ‘놀랐다’고 했다. 그만큼 정부의 준비작업이 충실했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 있었다면 경제 보복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노력에 힘쓰는 게 더 낫지 않나. 정부는 대응책을 준비했다고 공언했지만 싸움을 위해 미리 전략을 누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하는 이야기로 보아 장기전을 준비한 것 같지는 않다.
이와 달리 일본은 자국 기업들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조짐이 엿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이 내놓은 종합정책집이 하나의 증거다. 자민당은 정책집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을 거론하며 “국제법과 국제합의 위반”이자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끊임없이 검토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라는 말은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봉쇄하는 명분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일본이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에는 문재인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사실상 무효화 시키자 이를 기회로 한국을 확실히 손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자민당은 중요한 선거가 있으면 국정운영 방침을 담은 정책집을 발간하는데, 2017년 10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펴낸 정책집에서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 “러시아·한국에 의한 불법점유가 계속되는 북방영토·독도의 조기반환을 위해 정상레벨의 교섭을 활성화하겠다. 또 반환을 위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국내 홍보·계발 활동을 강화하고 교과서 기술 확충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고만 밝혔다. 한일 간 정상외교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에서 2년 만에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통해 재발을 막겠다는 쪽으로 180도 선회한 것이다.
그 2년 사이 한국에서는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공식으로 무효화했고,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의 개인 청구권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충분히 한일 간 보복전이 예상되는 일들이 이어졌지만, 일본과의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움직임은 없었다. 만약 이번 사태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나서야 대책이 나온다면 정부는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