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불황 속 소비자 심리 우롱한 얌체 상혼
10년 전 가격이라더니…타사보다 비싸기도
일부 소비자“평시 할인행사 때와 가격 비슷”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서울 문래동에 살고 있는 전업주부 서모(38)씨는 지난 24일 ‘10년 전보다 더 싸게’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홈플러스 영등포점으로 쇼핑을 나섰다가 실망감만 안고 돌아왔다. 저렴한 가격으로 생필품을 장만하기 위해 매장을 찾았지만 10년 전보다 저렴한 가격의 상품이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국내 굴지의 대형할인마트인 (주)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창사 10주년(5월 15일)을 맞아 지난 5일부터 10주동안 전국 111개 매장에서 ‘타임머신 1999년-10년 전보다 더 싸게’ 행사를 벌이고 있다. 방송∙지면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도 집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10년 전보다 싼’ 상품은 20개 제품에 불과해 일부 소비자들에게 ‘실속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PB(자체 브랜드)상품이나 생활필수품이 아닌 품목 위주의 할인판매 역시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불황 여파에 따라 국민 대부분이 지갑을 꽁꽁 닫고 있어 대형마트들의 매출도 덩달아 곤두박질치고 있다. 홈플러스가 고객에게 보답한다는 의미로 준비한 10주년 행사도 행사지만 ‘10년 전보다 더 싸게’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할인행사에 적극 나선 이유는 매출이 하행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홈플러스의 지난 2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1% 줄었다. 때문에 이번 행사는 ‘보답’과 ‘홍보’의 의미가 공존하고 있는 할인전인 것.하지만 홈플러스측이 경기불황 극복을 위해 물가관리품목으로 지정한 14,000여개 중 10년 전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은 정작 20개에 불과해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과대광고’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게다가 매주 종류가 바뀌는 20大 할인제품 중 2~3개 품목은 홈플러스 회원들만이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비회원의 경우 10년 전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품의 수는 17~18개 정도 뿐이다. 그마저도 1개의 상품은 한정판매다. 20大 특가상품 중 ‘회원만 할인’이 2~3개
또 할인상품의 종류 또한 소비자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19일~25일 기준 할인판매되고 있던 20大 상품의 경우 과자류가 3종, 음료류 2종이었으며 배드민턴 라켓, 발코니 매트, 패션모자, 욕실화, 건오징어, 다리미 등이 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초 생활필수품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품목이 절반이었던 것.이와 관련 주부 권모(52)씨는 “광고를 보고 기대감을 안고 찾아왔는데 실생활에 꼭 필요한 상품은 10년 전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집의 경우 어린 아이가 없어 과자류를 잘 구입하지도 않는데 10년 전 가격 할인 품목 중 과자만 3종류다. 할인품목이 다양하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할인폭 또한 대형마트들이 수시로 진행하는 일반할인 행사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같은 기간 기준, 홈플러스는 20大 할인 제품으로 PB제품인 1.45ℓ 용량의 오렌지∙포도 주스를 900원에 판매했다. 하지만 이 가격은 동네 소형마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가격이다. 같은 기간 또 다른 대형마트인 E사에서는 1.5ℓ 제주감귤 주스를 920원에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용량∙가격을 대비했을 때 10년 전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홈플러스와 차이가 없는 것. 심지어 20大 품목 중 E사보다 비싼 제품도 있었다. 홈플러스가 물티슈(60매X3입)를 6,900원에 판매한 반면 같은 기간 E사는 64매X6입을 10,900원에 판매했다. 홈플러스(38.3원)가 E사(28.4원)보다 1매당 9.9원 비싸게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같은 기간 20대 상품 중 홈플러스의 건오징어가 E사보다 마리당 302원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타사보다 비싸거나 비슷한 가격을 보였던 제품은 평시에도 일반 제품보다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PB제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 눈높이 빗겨간 전국적 할인행사
실제로 이 같은 할인행사는 할인 혜택이 거의 없어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 높다. ‘업계 최고 할인률’ ‘특별기획’ ‘최대’ 등 홍보문구는 거창한 반면 안을 들여다보면 행사 상품은 일부에 불과하다거나 할인폭이 낮아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한 50대 주부는 “(홈플러스에서) 10년 전 가격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는데 일부 야채종류 등을 제외하고는 평소 할인행사 때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을 잘 모르겠다. 또 PB제품위주의 행사라 제품의 질적인 면에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먹는 주식인 쌀 등을 10년 전 가격으로 판매해야 ‘우와, 진짜 싸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또 다른 주부 김모(44)씨는 “집 근처에 있어 자주 오던 곳이라 온 것이지 할인행사를 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온 것은 아니”라면서 “‘10년 전보다 싸게’ 품목보다 50%세일 품목에 더 유용한 상품이 많아 눈길이 간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동시 진행되는 세일행사 많다”
‘10년 전보다 싸게’ 마케팅이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과장광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15초의 짧은 CF에서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담아낼 수 없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 싸게 판매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전달한 것뿐이지 과장광고라고 할 수 없다”며 “전단지에는 20대 품목에 대해 10년 전보다 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을 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란한 전단지의 1면에는 ‘10년 전보다 더 싸게’ ‘확 내렸습니다’라는 문구만 크게 적혀 있을 뿐 ‘20개 품목에 한정’이라는 얘기는 뒷면에서야 등장한다. 실질적인 할인품목은 뒤로 뺀 것. ‘소비자를 현혹시키려 했다’는 질타를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다. ‘대대적인 광고와 달리 20대 품목에 한해서만 10년 전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실제로 모든 제품에 대해 10년 전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홈플러스는 얼마가지 않아 망할 것”이라면서 “10주년 기념행사에는 이외에도 50% 10대 기획전, 신선제품 천원의 행복, 최저 가격 ‘앗싸다비아 상품전’ 등 다양한 할인행사가 준비돼 있어 소비자들에게 가계절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할인 판매되는 제품은 매주 바뀌기 때문에 품목의 다양성 역시 부족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