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의 백수탈출] 도전하는 청년이 아름답다
2020-07-17 송병형 기자
‘소확행’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한다. 30여 년 전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나온 말이다. 유사한 표현으로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 꺔’(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 네덜란드의 ‘헤젤러흐’(gezellig) 등이 있다.
소확행은 정작 탄생지인 일본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 대만에서 크게 유행을 했고,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후반부터 자주 언급되기 시작하더니 2017년 말에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연구소가 선정한 2018년의 소비트렌트 중 하나가 됐다.
일상 속에서 행복함을 찾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씁쓸한 한국 사회가 존재한다. 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왜 불확실하지만 큰 행복을 추구하진 않을까? 아마도 계속되는 불황과 양극화, 취업난과 N포세대 등장 등 사회적 위기에 ‘자기 합리화’로 대응한 결과이지 싶다. ‘한번 사는 인생 뒷일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문화의 확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 어제보다 나은 나를 추구하는 것은 우릴 성장시키는 추진력이다. 하지만 소확행을 추구하다 보면 현재 삶에 안주하며 현 상황을 합리화하기 쉽다. 소확행에는 ‘성취하기 쉬운’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주택 구입이나 취업, 결혼과 같이 크지만 불확실한 행복보다는 당장 이루기 쉬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소확행에 안주할 경우 냉정하고 힘든 사회에 애초 도전할 의지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 부모님 세대만큼 혹은 한국 중산층조차 이뤄내기 힘든 시대에서 일종의 자기 합리화이자 자기 보호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다. 현실의 냉혹함 속에서 소확행을 찾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해선 눈앞의 소확행을 내려놓고, 직면한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안락한 소확행에 빠진 나머지 더 멋진 나를 만드는 과정을 잃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을 수 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도 있을 수 있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소확행이 유행하는 현재 우리 사회는 모두가 하루하루 의미와 행복을 찾으려고 집착하고 있다. 소확행이 존재하지 않는 일상을 버티지 못하고, 계속해 행복함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행복이란 직접적으로 추구하기 보단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레 느끼기 마련임에도, 우리는 너무 행복에 집착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고 평범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소확행 본질마저 어지럽히고 있다. 우리는 지금 소확행에 너무 초점을 맞출 나머지 더 큰 행복은 잡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확행이 지금 현 상태를 정당화하는 방패로 사용되지 않도록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기다.
소소하지 않은, 얻어내기 힘든 행복도 놓쳐선 안 되며 그러한 행복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역시 도전하는 청년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