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진실에 접근하는 방법

2019-07-31     고영상 변호사
고영상
다양한 형사사건 중 성범죄가 어려운 이유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뿐이고 가해자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데, 거기에 당사자의 각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이면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한창 논란이 됐던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서는 CCTV 영상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 결과, 사건 경위, 사건 발생 후 당사자 행동, 당사자 관계 등을 고려하면 결론은 명백한 사건이었다. 당사자의 진술이 평행선을 달리더라도 당사자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및 SNS 내역, 대질조사,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진실을 가늠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조사를 모두 거치더라도 미궁에 남겨진 사건들도 있다. 이런 경우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는데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과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 사이에 팽팽한 싸움이 있고 결국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 된다. 문제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사건이 (그 반대의 경우도 동일하다) 항소심에서 유죄로 바뀌는 경우이다. 3심제의 사법제도에서 판결 내용이 변경되는 것이 왜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1심과 2심에 제출된 증거 및 검찰과 변호인 주장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재판 결과가 바뀌면 어느 판결이 옳은가라는 문제는 별개로 하고,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쉽게 납득 할 수 없다. 동일한 증거, 증언을 보고 어떤 재판부는 무죄 또는 유죄의 증거로 보았고, 다른 재판부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리에 대한 판단이라면 수긍할 수 있지만 동일한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가 재판부마다 바뀌면 당연히 논쟁거리가 된다. 재판을 한 판사의 학교, 고향 등 출신은 물론 진보, 보수인지에 대한 정치색까지 논란이 된다. 이러한 것은 사건의 사실관계 확정을 전적으로 판사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단독사건은 판사 1명이, 합의부 사건은 판사 3명이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 즉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판단한다. 아무리 법리적으로 훈련받았다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판사의 가치관, 선입관이 사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대안은 있을까? 우리나라는 2008년 1월 1일부터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배심원으로 선정된 일반 시민들이 재판 절차에 참여한 후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평결을 내린다. 본인의 혐의를 배심원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꺼려 하는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 진행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법원, 검찰 및 변호사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사건, 성범죄 중 피해자 진술이 유죄 입증의 유일한 증거인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일반인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형량이 선고될 수 있고, 수인의 배심원들이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이 보다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재판이 계속 중이다. 밝혀진 범죄, 범죄에 이르지 않더라도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대안이 사법제도가 현재보다 공개되고 시민들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이 아닌, 인물 교체에 한정된다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