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한일관계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

2019-08-08     송병형 기자
배상순

필자에겐 한일 관계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뒤엉킨 실타래마냥 복잡한 문제로 보인다. 교토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배상순의 샹들리에 시리즈처럼. 그래서 한일 갈등을 풀어가는 데 쾌도난마와 같은 해법을 떠올릴 수 없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듯 조심스럽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배상순의 샹들리에 시리즈는 격동의 한일근대사에서 한일관계에 기반을 둔 평균연령 80세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듣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빛을 더하여 세상에 알리고자하는 작업이다. 엉킨 실타래로 표현된 샹들리에는 전쟁과 종전 등 크고 작은 한일관계를 경험한 여성들의 복합적인 여정을 상징한다.

샹들리에 연작은 2015년 대전문화재단의 지역리서치 프로젝트 참여로 처음 발표되었다. 1900년대 초 러일전쟁에 대비해 한반도를 횡단하는 철도 건설을 서두르고 있던 일본은 대전을 중요한 중계 지점으로 선정해 도시 개발을 진행했다고 한다. 철도 기술자들의 이주와 더불어 상점이나 공장을 건설해서인지 당시 사진에서 일본어 간판이 늘어선 일본풍의 거리에 일본식 복장을 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패전 후 대전에 거주했던 일본인은 본토로 돌아왔으며 대전의 근대 건축물의 대부분은 한국 전쟁 때 파괴되었다. 그 후 한일 양국의 역사에서 대전은 거의 거론되는 적이 없었으나, 최근에 이르러 식민지 시대의 도시 형성의 역사를 탐구하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조명되고 있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타카시마 메구미는 “샹들리에 시리즈는 암흑 속에서 얽히고설킨 온갖 색깔의 무수히 가는 실을 촬영한 사진 작품이다. 한국과 일본의 견사의 실타래를 일단 풀어 다시 얽히고 꼬이게 해 늘어뜨렸다. 그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대전에 있던 일본인들이, 패전 후 일본으로 귀환 했을 때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는 것만으로 일본에서 겪어야했던 또 하나의 차별도 포함한다. 개인의 기억과 국가적 욕망 등이 겹쳐진다. 대전이라는 도시로 이주하고 오가고 떠나 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교차하는 양국의 역사이면서 제국주의의 욕망과 함께 확장되어가는 선로의 부푼 동맥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샹들리에가 가진 부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반어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배상순의 샹들리에는 억압된 채 말해지지 않았던 개인의 기억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출발해 국가의 역사에서 파묻혀 온 식민지 지배의 기억을 희미한 빛으로 비추어 내고 있다”라고 평했다.

배상순 작가는 마침 부산 전시 참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또 다른 매듭 연작이 출품된 전시다. 작가는 필자와의 대화에서 “오늘날의 한일 간 정치적 다툼 안에서 국가 권력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은 시민들의 몫이 된다. 그들의 권력과 미디어에 흔들리지 않은 성숙하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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