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달 감사원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2014년부터 건설사에 대한 직접보증보험을 회피한 정황을 근거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동 보험은 해외건설공사에 필요한 입찰과 계약이행 등의 보증발급을 다룬다.
해외공사에서 발급되는 보증은 3가지로 보증기관이 직접 보증보험을 발급하는 직(直)보증, 한 보증을 담보로 국내외의 타 금융기관이 발급하는 복(復)보증, 이를 담보로 해외 금융기관이 다시 발급하는 복복(復復)보증이 있다.
보증형태는 인수위험의 보유비율 등에 따라 결정되며 보증단계가 추가될수록 보험료(수수료)가 높다. 복보증의 경우는 해외의 발주처가 현지 금융기관을 통해 보증서를 발급토록 요구하는 피치못한 상황도 적지 않다.
감사원의 지적사항은 그간 동 기관이 건설사들에게 직보증보다 보험료가 높은 복복보증을 이용토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또 2015년부터는 해당되는 건설사가 거의 없는 ‘회사채등급 A-’이상으로 이용요건을 강화한 것도 문제삼았다.
하지만 위험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기관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증의 직접발급은 지급요건의 충족시 발생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보험사들도 인수한 보험물건을 재보험으로 출재해 관행적으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을 감안하면, 동 기관이 보증발급을 사실상의 재보험인 복복보증으로 처리한 것도 납득가능한 사안이다. 그리고 보증발급의 수익보다 위험이 크다고 경영진이 판단했다면 이용요건의 강화는 일종의 디마케팅(demarketing)이 된다.
그렇다면 동 기관이 적극적으로 위험을 회피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위험을 평가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역량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업무 결과의 책임을 져야하는 실무진으로서도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성보다 담보나 재무제표 평가에 집중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이렇다보니 금융기관들은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어렵다. 자원의 집중투입이 아닌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성취되는 경험역량이 부족하니 전문인력의 양성도 진전이 없다. 이런 상황은 금융과 연계된 여러 산업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해외건설과 연관된 타 금융기관들의 상황도 다를 바 없다. 5개 정책금융기관들이 리스크를 분담하도록 2015년에 도입된 공동보증제도를 이용한 건설사가 최근 2년 간 전무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각에서는 프로젝트 평가는 외국의 전문기관에 외주로 맡길 수 있으니 금융기관의 자체역량으로 갖출 필요는 없다고도 주장한다. 정말일까? 만약 그렇다면 건설과 금융을 접목한 고부가가치의 창출같은 목표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례를 계기로 기존의 업무관행과 문화에서 벗어나 어떻게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금융기관의 경쟁력으로 체화시킬지를 다시금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원론을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이미 아는 내용과 제시된 방향을 어떻게 실행으로 옮겨 현실화할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