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잠 잘 자는 나라

2019-09-18     한종훈 기자
김용석

[김용석 딜란디스코리아 대표] 사당오락(四當五落). ‘네 시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한자성어 신조어는 치열한 국내 교육환경과 경쟁적인 세태를 반영한다 해 듣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동시에 씁쓸한 웃음을 줬다.

이 신조어 일면에는 ‘깨어있는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낭비처럼 느껴지는 ‘잠들어 있는 시간’에 대해 인색하고 무관심한 우리네의 정서 역시 함유된 듯 하다.

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수면(쾌면·꿀잠)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격언과 이를 따르는 문화와 관습은 여기저기 넘쳐난다.

스페인과 그 식민 지배를 받았던 중남미 라틴국가들에서 ‘시에스타(Siesta·낮잠)’는 21세기 현재까지 진하게 남아있는 풍습이다. 90년대 말 중남미에서 유학을 했던 필자는 점심 무렵 관공서건 은행이건 돌아가지 않는 두 세 시간에 매우 답답해 했던 기억이 있다. 통계로 보여지는 숫자가 어떻든 간에 유난히 낙천적이고 에너지 넘치던 그들의 삶의 태도가 어쩌면 ‘좋은 잠’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신은 현세에 있어서 여러 가지 근심의 보상으로서 우리들에게 희망과 수면을 줬다”고 했으며,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좋은 잠은 자연이 선사하는 간호사”라고 말했다. 고대중국의 의학서인 황제내경에는 “밤에는 사람의 기운이 오장(五臟)으로 들어가 장기(臟器)를 튼튼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외신란에서는 슬피포노믹스란 단어가 익숙해졌다. 수면과 경제학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는 불면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한 수면 산업과 관련 시장을 뜻한다.

질 좋은 수면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면서 슬리포믹스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CC리서치는 올해 슬리포믹스 시장규모를 80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혹자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정보통신(IT),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으로 수면 상태를 분석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술인 슬립테크가 그 중심에 설 것이란 의견을 내놓는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평균 수면시간 최하위(평균 7시간 41분, OECD 평균 8시간 22분, 2016년 WHO 통계)를 기록한 '잠이 부족한 나라’다. 잠이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고 감염 예방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낸 독일 튀빙겐대학의 올초 연구결과처럼 오늘날의 의과학은 잠이 건강에 미치는 실제적인 영향을 속속 밝히고 있다.

이제 ‘좋은 잠, 쾌면, 꿀잠’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미래의 먹거리인 슬리포노믹스와 슬립테크 산업 적극 육성에 관심을 가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