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주당의 탈선
2020-09-24 송병형 기자
보수정권 9년 동안 진보진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수호’ 메시지가 금과옥조처럼 회자됐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불과 두 달 전이다. 김 전 대통령은 2009년 6월 1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에서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올라 이명박 정권하에서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며 “여러분께 간곡히 피 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린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보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을 6개월여 앞둔 2007년 6월 16일 제8차 노사모 총회에 축하메시지를 보낸 적 있다. 그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라고 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란 메시지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메시지도 기본전제는 보편적 상식과 양심의 존재다. 두 지도자는 한국인 다수의 마음속에 상식과 양심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는 꺼지지 않고 언제든 다시 타오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믿음이 진보진영 내에서 부정당하고 있다.
지난 18일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한창 타오를 때 민주당 창당 64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당 지도부의 연설이 끝나자 당원 대표 두 사람의 발언 기회가 찾아왔다. 10여 년간 지역에서 자원봉사 활동으로 귀감이 됐다는 서울지역 당원이 첫 발언자였다. 그는 조국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추석 때 시댁에 가니 역시나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얘기가 나왔다...저희 큰아버지·큰어머니는 어디 가서 ‘문재인이가’(라며 안 좋은 얘기를) 하시지만 ‘저는 우리 애들이 자라서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 되고, 조국과 같은 방법으로 성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씀 드렸는데 그 뒤로 아무 말씀도 없었고 정치 얘기가 싹 사라졌다.” 이 같은 발언에 현장에서는 당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고 한다. ‘조국과 같은 편법과 반칙으로 아이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발언 어디에 상식과 양심이 존재하는가. 이런 발언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소위 대표당원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창당대회 이후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있고, 검찰의 수사는 조국 장관 본인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당은 민주주의 궤도를 벗어난 열성 지지자들이야말로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라 강변하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지난 토요일 검찰 앞을 비춘 3만 개의 촛불은 검찰이 과연 정의로운 수사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50만의 잠재된 촛불이 검찰의 수사를 주시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수사가 되길 요구한다.” 조국 장관 자택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직후 민주당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글이다. 민주당의 양심은 고장났고 그들의 민주주의는 탈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