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곰팡이가 만든 예술

2020-10-10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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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적신 광목천 위에 우유나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린 뒤 일부분을 구기거나 펴서 20cm이상 파낸 땅에 묻는다. 파묻은 천위로 흙을 덮어 한두 달 방치한다. 자연의 섭리랄까 심술이랄까. 그 사이 비가 내리는가 하면 서리가 내리기도 한다. 여름이면 폭염이, 가을이면 장마가, 겨울이면 혹한이 얇게 묻힌 광목천을 엄습한다. 그 모든 자연의 변화들이 광목천 위에 뿌려진 우유나 빵 부스러기를 통해 묘한 조화를 부린다. 형형색색의 곰팡이가 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곰팡이가 피어나고 얼룩자국으로 더럽혀진 광목천을 꺼내어 물에 부드럽게 빨아 건조시킨다. 건조시킨 천을 캔버스에 배접을 하고, 그 위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린다. 이게 바로 김창호 작가의 작업 방식이다. 그는 시간의 풍화작용과 우연성을 통해 얻은 회화적 표현 방식위에 정지해 있는 정물을 병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창호 작가는 주로 미국 서부 네바다의 황량한 사막을 그리는데 이는 작가의 정체성이다. 그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막에도 많은 생명들이 있는 것처럼 황량한 마음속에도 싹트는 삶의 가치와 의욕, 가능성을 스스로 묻는 작업”이라고 한다. 작가에게 있어 곰팡이는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을 담아내는 수단이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제 작업 밑에 깔려 있는 것들은 곰팡이가 아니라 그것의 흔적이다. 저는 그것을 존재의 흔적, 삶의 문제에 있어서의 허무함,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의 흔적들로 인식한다”고 했다.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우연위에 작가의 힘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에 대해 작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자연이 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결합시켜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곰팡이는 변화, 이를 바탕으로 그려진 자연, 정물 등은 멈춤을 의미한다. 변화와 멈춤 사이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작품의 제목이 대부분 ‘Still Life’, ‘안과 밖’이 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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