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가보지 않은 길'에 선 금융시장…'함정'은 피해야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어느새 '1.25%' 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끌어 내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 여력이 있다"며 추가인하 가능성마저 열어뒀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의 주요인은 갈수록 고꾸라지고 있는 성장률이 꼽힌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인한 수출 위축과 이에 따른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한은은 기준금리 결정 배경을 설명하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통해 최근 2.2%까지 내려잡았던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도 달성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5일 국제통화기금도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6개월 전보다 0.6%포인트 낮춘 2.0%로 하향했다.
이제 한은의 기준금리 기조는 완연히 인하 쪽으로 꺾어선 모습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벌써부터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내릴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올해 기준금리를 다시 조정할 수 있는 한은 금통위는 다음 달 말 한 차례밖에 남지 않았다. 연내 추가 인하는 어렵다는게 중론이지만, 이르면 내년 1분기 중, 늦어도 상반기 안에는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반년여 내에 기준금리 1.00% 시대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우리 금융 시장이 이른바 '가보지 않은 길'로 진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서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많다. 우선 기준금리 인하가 제대로 된 경기 부양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미 천문학적으로 불어나 있는 가계부채만 다시 꿈틀거리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시중 통화량을 늘려 경기를 유지하거나 활성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가 기준금리 인하이지만 금리 인하가 동력을 상실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곳곳에서 들린다.
가장 큰 걸림돌은 심화하고 있는 저(低)물가다. 낮은 인플레이션이 단지 소비 심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영향을 넘어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마저 무디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자칫 경기 침체를 장기화 국면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실제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2015년=100 기준)로 전년 동월 대비 0.4% 떨어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전보다 하락한 것은 1965년 전도시 소비자물가지수 통계 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우리나라의 일반인 기대 인플레이션은 1%대 후반으로 낮아졌다.
얼마 전 신인석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의 하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통화 당국의 금리 정책 무력화 위험을 들었다. 이어 이 같은 리스크가 소비 심리 위축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마이너스로 하락할 경우 금리 정책의 무력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며 "이러면 경제가 일시적인 경기 침체에 빠졌을 때 통화정책으로 경제를 균형 상태로 복귀시키기 곤란해지고, 그 만큼 장기 침체의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금리 인하로 기대되는 경기 부양 효과를 두고 의구심이 짙어지는 가운데, 한쪽에선 가계 빚을 둘러싼 역풍도 걱정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출 이자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더 내려가면 부채 수요는 확대될 공산이 크다. 은행들의 지난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연 2.92%로, 2001년 9월 통계 편제 후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 와중 올해 상반기 말 가계신용은 1556조1000억원까지 불며 역대 최대 기록 경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내린 것은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불가피한 카드였을 것으로 본다. 다만, 우리 경제가 시중에 유동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금리를 내려도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는 경기부양 효과가 없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상황이 아닌지 살펴볼 때다.
우리나라를 향해 "금리인하만으론 경기둔화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치 않은 만큼, 적극적인 재정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신임 IMF 총재의 충고도 다시한번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