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기업들, CSR 속앓이...“경제민주화도 좋지만…”
사회공헌 활동 및 예산 점수화한 ‘성적표’에 기업 부담 가중
2013-01-16 이한듬 기자
[매일일보 이한듬 기자] 대한민국의 새로운 5년을 책임질 차기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움에 따라 재계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이에 국내를 대표하는 주요기업 총수들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 강화 계획을 밝히는 등 벌써부터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에 분주하다.하지만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각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및 예산집행 내역을 평가해 ‘성적표’를 작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착한기업’을 선정해 사회공헌을 독려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윤리적인 차원에서 자발적 참여로 이뤄져야할 문제를 제도화 시킬 경우 기업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지난 15일 금감원은 생명ㆍ손해보험협회와 각 보험사에 공문을 보내 2012회계연도 3분기(2012년 10~12월)부터 사회공헌 실적을 경영공시에 포함하라고 지도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각 보험사들은 분기마다 경영공시에 사회공헌 실적을 보여줄 수 있는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세부항목으로는 사회공헌 활동 비전(방향ㆍ목표 등), 주요 활동 현황, 분야별 집행금액과 봉사활동 시간ㆍ인원 등이 포함된다.당기순이익 대비 집행금액과 전체 인원 대비 봉사활동 인원 등 지표도 들어갈 전망이며, 이르면 다음달 말부터 각 회사와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각 회사의 사회공헌 활동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각 기업의 평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이 때문에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사회공헌 활동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회사별 일괄 비교를 하는 데는 부담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회사의 노력이 단순 수치 비교를 통해 성적으로 매겨질 경우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당국과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익명을 요청한 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금도 생명보험협회가 매년 보고서를 발간해 각 보험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소개하고 있는데, 공시라는 정형화된 제도를 통해 구체적인 예산집행 내역까지 오픈하면 아무래도 각 기업별로 액수가 비교돼 부담을 갖는 기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문제는 이 같은 사회공헌 내역 정보공개가 보험사를 넘어 상장사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이 경우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기업들은 타 기업과의 사회공헌 예산 집행 내역 비교에 부담감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실제로 상당수의 기업들은 사회공헌 활동 예산집행 내역 공개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단순 비교의 소지가 있어 지금도 예산내역 외부공개를 하고 있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예산 등의 수치만을 일괄적으로 평가해 성적이 매겨질 경우 타 기업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고, 기업별로 진행 중인 다양한 활동의 취지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또 다른 기업 관계자 역시 “재무구조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라 사회공헌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엔 무리가 있어 임직원의 봉사활동 등 ‘액션’ 중심의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며 “하지만 예산과 활동 내역을 수치화해 비교할 경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는 회사의 노력과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 같아 우려된다”고 토로했다.이와 관련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참여를 독려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무리한 제도화는 자칫 기업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이미 기업들 사이에 사회공헌 강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실제활동은 각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