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장수기업은 세기를 뛰어넘은 오랜 기간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혁신해 젊음을 유지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 기업이다. 큰 기업보다 강한 기업, 강한 기업보다 오래된 기업에 기업가의 혼이 스며있다. 서두르지 않되 한결같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본업을 발전시키는 장인정신이 흐른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노하우와 암묵지로 존재하는 기술에 충실한 기업가정신은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 지역성과 전수성, 개인의 창의성, 유연성, 혁신성이 잘 어우러져 갈무리돼있다.
남원 목기는 천연재료인 옻을 칠하는 기술이 뛰어난 장인이 고급스러운 색을 내고 특유의 향기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지니도록 마감하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남원의 형제대장간은 이발소 면도칼의 원리를 이용해 날이 얇으나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기능성으로 마감한 수제 부엌칼 ‘남원청리작(南原靑利作)’ 제작소다. 대장장이가 뜨거운 불에 담금질한 쇳덩이를 칠십 번 이상 두들기는 단조과정을 거쳐 투박한 쇠를 아름다운 금속도구로 만든다.
‘제3이탈리아 클러스터’는 북동부 지역에서 금속과 기계장비, 섬유 및 의류, 목재가구, 도자기 등 전통산업을 위주로 경제활동을 펼친다. 일본은 물건을 만들 때 혼을 불어넣는 장인정신이 있다. 우동 한 그릇을 만들더라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物作り)는 ‘오래된 가게’라는 뜻의 ‘시니세(老鋪)’를 낳았다.
독일은 마이스터(Meister)의 손길이 소시지부터 자동차 부품까지 뻗쳐 뛰어난 제품이 되게 기술을 연마한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는 마이스터 제도를 바탕으로 탁월한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지닌 중소기업이다. 오늘날 독일을 있게 한 경제의 핵심축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으나 분야별 틈새시장을 선도하는 강소기업인 히든챔피언의 상당수는 장수하는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은 외부 주주의 제약이 약하므로 유망한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의사결정이 자유롭고 하고 싶은 기술개발에 몰두할 수 있어 일반기업보다 혁신에 효율적이다.
장수기업의 장인정신은 선대가 물려준 자서전, 가훈 등에 담긴 철학을 가업에 반영해 잇기 때문이다. 장인정신을 계승하는 가문은 평판이 기업 브랜드와 맞물려 있어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하는 의사결정을 한다.
장수기업은 시대와 환경변화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면서 창업 이래 지속해온 본업을 이어간다. 세계 최초로 수분유지 효과가 탁월한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를 개발한 유신주조(1854년 창업)는 지금도 본업인 일본 전통술을 제조하고 있다. 구레다케(1902년 창업)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먹(墨)의 기술을 활용하여 “붓펜”을 개발하는 등 본업의 연장선에서 고유기술을 계승해 발전시킨다.
일본의 장수기업은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는다. 300~400년된 기업도 직원이 불과 5명 이내인 경우가 많다. 축소지향을 선호해 작게 하는 것이 오히려 존재감을 크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존속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몸집이 작은 곤충의 생존력이 몸집이 큰 코끼리보다 강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일본의 장수기업은 축소 지향적인 곤충의 전략을 대형화와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코끼리 전략보다 선호한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장수기업의 공통점은 일을 삶에 접목해 가문을 잇는다. 최신 기술이라도 소비자가 기대하는 수준에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개발하되 서두르지 않는다. 기술이 검증될 때까지 수많은 실험과 테스트를 한다. 기업의 백년대계를 설계한다.
우리나라도 혁신적인 다수의 장수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기술을 혁신해 제품으로 거듭나려는 각오가 가슴에 각인돼야 한다. 한 단계, 한 절차라도 확인하고 검증해 오류를 없앤 완전무결한 제품을 만드는 구체적인 설계와 노력이 선대가 물려준 숨결에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