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감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세상은 ‘창의성’과 ‘감수성’을 강조한다. 감성을 자극해야 소위 ‘먹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감성을 자극해야 사람들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에 몇몇 전문가들은 창의적인 생각으로 다른 아이디어들을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미래의 인재라고 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감성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그 근간에는 사람과 기술이 변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산업화와 함께 세상을 지배했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은 세대들은 각종 IT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자라났기 때문에 과거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성향을 지니게 됐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점이라는 주장이 맥락이다.
결국 ‘산업화→정보화→지식화’의 세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성향이 달라졌다는 것인데 일견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생활환경의 변화가 사람들의 생각 및 행동 양식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가올 미래의 변화들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즉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적 변화와 그러한 세상에 맞는 사고방식의 변화, 즉 감성의 시대에 대한 준비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 중 핵심이 바로 공감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창의적 아이디어’라고 한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용어 자체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임은 분명하다.
굳이 언어적으로 정의하자면 매우 광의적인 표현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바탕에는 배려, 이해, 공감, 소통 등 많은 의미들이 이미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감성적인 접근’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감성의 시대가 쏟아내고 있는 담론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그 논리적 배경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 있다. 바로 ‘뇌 구조과학’ 분야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뇌의 구조와 기능적 특징에 대한 연구들이 감성의 시대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고, 논리 등을 담당하는 좌뇌와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의 기능 차이에 대한 것이다.
즉 사람의 뇌는 크게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는데, 요즘 시대에는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가 중요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사람들이 과거보다 감성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베이비부머 이후 새로운 세대들은 우뇌가 더 많이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실제 그런 식으로 요즘의 변화상을 설명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심지어 앞으로의 인재는 우뇌형 인간, 즉 감성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사람이 인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뇌는 좌뇌, 우뇌가 차별적으로 발달하고 또 학습에 따라 좌뇌, 우뇌의 반응이 크게 달라지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박한선 박사는 2018년 동아사이언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이분법적 편견이 바탕이 된 통속 심리학’이라고 지적한다. 박 박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좌뇌, 우뇌 구분없이 모두 열심히 작동하고 있으며, 좌뇌, 우뇌의 발달에 따른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적 편견은 별로 과학적이지 않다고 설명한다.
즉 좌뇌 우뇌의 기능이 다른 것은 맞는데 이를 굳이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것이다. 논리, 사고 중시형 인간과 감성 중시형 인간등의 구분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구분체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감성의 시대를 강조하는 것 역시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조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런 비과학적 구분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제는 가정,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감성적인 자극이 중요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감정 자극하기’가 너무 당연시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소통에 꼭 감성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논리적 분석과 합리적 판단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신의 실수나 패배까지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감성보다는 이성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한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감성 중심의 사회 역시 누군가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고 배포된 스토리이자 트랜드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트렌드가 어떻게 작용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긴 호흡을 갖고 천천히 복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런 사회적 변화를 이용해 정치적,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이들은 충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을 지지한 광신도들의 행동도 매우 감성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아이의 좌뇌 감수성 테스트를 받으라고 권유하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고, 소통과 공감을 외치면서 ‘힘드시죠?’라며 대중을 위로하려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당신에게 무엇인지는 모를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