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갈등에도 안 풀리는 '실손보험금청구 간소화'

의료업계 “정보 유출 우려로 반대 투쟁 불사” 보험업계 “소비자 경제적 손실‧불편 생각해야”

2020-11-05     박한나 기자
의사협회가
[매일일보 박한나 기자] 보험사와 의사가 10년째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두고 갈등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에서 바라는 대로 간소화에 동의했지만, 의료업계는 이를 저지하기로 했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사무실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대행 강제화 개악 법안 철회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는 의협이 지난 2일 긴급 상임이사회를 열고 국회에서 추진 중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막기 위한 결의의 일환이다. 의사협회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보험사가 가입자의 질병 관련 정보를 쉽게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환자 정보를 중계하게 되는 심평원이나 전문중계기관을 통해 개인정보가 누출되거나 악용될 소지가 있고, 정부기관인 심평원이 사기업인 보험업계를 위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9월 고용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이다. 법안은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때 의료기관 진료비 내역서를 보험사에 전송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담고 있다. 소비자들이 보험금을 신속히 받게 하자는 게 입법 취지다. 의협은 반발하고 있다. 보험사가 보험 가입이나 갱신을 거부하고 진료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유리하기는커녕 보험금을 적게 주려는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도 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의협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에 대한 입장을 ‘신중 검토’에서 ‘동의’로 바꾸었고, 보험업계는 크게 반겼었다. 물론 청구 간소화를 도입한 후 보험금 거절 건수가 늘어나면 문제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보험금 청구라는 소비자 권리를 처음부터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개인정보 유출도 기우라고 했다. 지금처럼 청구서류를 종이로 내면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고, 전산으로 내면 유출될 수 있다는 주장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이 10년째 이어지는 바람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들이다. 실손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이나 다름없다. 우리 국민 3400만명이 가입하고 있다. 번거로운 보험금 청구 절차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애초 국민권익위원회도 10년 전인 2009년 실손보험금 청구가 불편하다는 지적에 지도개선을 권고했었다. 소비자들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영수증, 진료내역서, 진단서 등 증빙서류를 최대 10만원에 달하는 비용으로 구비해야 한다. 청구 방법과 절차도 보험사마다 달라 소액 보험금은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끊임없이 간편화 필요성이 제기돼온 이유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며 “정보유출이 우려된다면 서류전송 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열람할 수 없도록 법률에 명시하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