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살인마, 치정과 폭력에 ‘욱’…그녀들의 殺을 부르는 주문

<‘피범벅’ 살인공식 대해부> 애정문제∙생활고∙우울증 등으로 갈등人 살해…그중 ‘배우자 살인’이 41%로 가장 높아

2009-04-17     류세나 기자

쾌감∙성적 동기 없는 개인적 문제로 범행
도구 이용한 ‘목 조르기’ 살해방식이 주류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2004년 유영철, 2006년 정남규, 2009년 강호순 등 잔혹한 살인마들의 실체가 2~3년을 주기로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역대 잔혹 살인마들은 대부분 여성을 주타켓으로 삼았던 ‘남성 살인범’이었고, 일반적으로 여성은 ‘살인범죄자’의 이미지와 부합되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새 자신의 자녀와 남편 등을 잔혹하게 살해한 여성들의 살인행각이 속속 드러나면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들 여성살인범들은 남성살인범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남성살인범들이 성적욕망이나 살인이 주는 쾌락 등을 채우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면 여성들은 우울증, 생활고, 가정불화 등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다.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여성살인범들의 범행공식을 <매일일보>이 집중해부했다.

지난달 25일 서울고법 형사4부(김창석 부장판사)는 거액의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마취제를 투여해 남편을 살해한 ‘무서운 아내’ 간호사 오모(38)씨에게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의 중형을 선고했다.

2002년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살고 살던 오씨는 경제적인 문제와 자신의 내연관계, 또 남편의 결혼 전 여자문제 때문에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씨는 2007년 10월 남편이 사망할 경우 4억5천만원을 받을 수 있는 2개의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했고, 남편은 이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같은 달 14일 아침, 거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남편은 전날 오씨의 친오빠와 함께 술을 마시다 잠이 들어 언뜻 음주 후 돌연사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부검결과 남편의 몸에서 호흡근을 마비시켜 호흡을 정지시키는 펜토탈소디움이 검출됐다. 또 오른팔에서는 정맥주사 자국도 발견된 것으로 드러났다.검∙경찰은 부인 오씨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이 마취제가 여러 병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오씨를 범인으로 지목, 구속기소 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남편과의 갈등과 경제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동기에서 범행이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증거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피고인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범행을 부인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가족 등 지인 살해하는 경우 많아

자신이 10달 동안 배 아파서 낳은 6살짜리 쌍둥이 남매를 잔혹하게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같은 달 18일 오후 3시 10분께 충남 서산시 죽성동 이모(41)씨의 집 안방에서 이씨의 아내(33)가 목매 숨져 있는 것을 큰딸(9)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같은 방에서 이씨의 이란성 쌍둥이 아들과 딸(6)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모씨의 아내는 A4용지에 유서를 남기고 “힘들어서 먼저 간다.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두 아들, 딸의 죽은 시간까지 기록해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외부침입 흔적이 없고, 남매의 시신에 목이 졸린 흔적이 있는 점 등을 미루어 이씨의 아내가 남매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남편 이씨는 경찰에서 “아내가 최근 ‘의욕이 없고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을 하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일련의 사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여성살인범들은 가족 등 지인을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살인범들의 이러한 범행유형은 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에서도 드러난다. 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부연구위원 등이 1976년부터 2006년까지 30년간  발생한 살인범죄의 추이를 분석한 결과, 여성살인범 대부분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을 피해자로 선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배우자(41.5%), 동거인(9.4%), 애인(6.4%) 등의 순이었다. 반면 남성 살인범죄자들 대부분은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녀들은 왜 살인자가 됐나 

이 연구결과에서처럼 대부분의 여성살인범의 범행은 ‘사랑’을 기반으로 함께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피해자로 삼고 있다. 이는 가정 내의 갈등상황이나 관계적 욕구를 외부로 표현하기 보다는 내부적으로 받아들인 후 순간적으로 분노와 폭력으로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살인자 중 70%가량이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살인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논쟁이나 폭력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논쟁의 이유는 30.3%가 애정문제, 가정 내 불화(18.2%),  모욕∙비하∙학대(15.2%)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남성살해범의 37%는 피해자와 아무런 갈등관계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친분관계가 없던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남성살인범들의 9.5%가 성적동기를 갖고 범행을 저지른 것과 달리 여성의 2%만이 신체부위에 상해를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성살해범 중 2.1%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으며,  여성들은 그의 6배에 달하는 12.5%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살해방식도 남성들과 차이를 보인다. 남녀 살해범 모두 목을 졸라 살해한 경우, 여성들은 도구를 이용한 뒤 목을 조른 반면 남성들은 자신의 힘만을 이용해 살해한 사례가 많았다. 이 같은 차이점은 사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남성은 사체를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는 등 은폐를 시도한 경우가 많았지만 여성들은 이불∙담요 등으로 사체의 일부 또는 전신을 덮는 경향을 보였다.

남성살인범보다 우울증 6배 높아

지난 30여년 간 여성 살인범들의 특징을 통계 낸 결과 이들 중에는 30대 이상의 기혼(혹은 동거)자가 많았으며 30% 정도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저학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범행 전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판매서비스직에 집중되어있는 등 대부분 낮은 생활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또 그리고 약 75% 정도는 초범이었으며, 성장기일탈경험도 남성 살인범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이와 관련 형사정책연구원 한 관계자는 “여성 살인은 가정 내 학대나 다른 강도 높은 갈등 상황 속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 살인범죄의 피해자가 배우자가 많음을 감안할 때 많은 수의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한순간에 상실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또한 어머니가 수감됐을 경우 사회는 자녀들을 양육하고 돌보기 위한 공공부조와 재정적 지원의 부담을 안게 된다”며“여성 살인범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실제적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