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출근하여 업무를 하다 보면,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과 민원인분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을 때가 있다.
행여 귀가 불편하신 어르신들께서 잘못 알아들으시지는 않을까, 그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칠까 하여 천천히, 하지만 정성들여 말씀드리는 직원들을 보면, 그분들이 걸어오신 삶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진다.
이렇듯 우리는 말에 간곡함과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전달하려 하고, 상대는 그 말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말을 하는 것만이 상대에게 나의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기형도 시인은 ‘소리의 뼈’라는 시에서 살이 붙어 있지 않은 뼈처럼, 귓가를 울리는 언어적인 자극은 없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의 틈을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오는, 침묵의 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와 감사보다, 침묵이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턴투워드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행사에서 지속되는 1분간의 묵념도 그 하나이다. 군악대의 묵념곡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잠시 이 세상의 흐름에서 비켜나 고요한 생각의 바다에 몸을 맡기게 된다.
즐거운 헤엄과 함께 수면으로 계속 떠오르려고 하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은, 그 행복을 위해 흘린 피와 땀에 적셔져, 점점 더 무게를 더하며 고요함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그리고 묵념곡이 마무리될 때, 우리는 그런 소중한 나라를 이어받아 살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에 다시 눈뜨게 된다.
한 마디 말도 없었지만, 참전용사들과의 수백 수천 마디의 대화를 묵념으로 대신한 셈이다.
11월 11일은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영연방의 현충일이자, 미국의 재향군인의 날로 6·25전쟁에 참전한 여러 국가에서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추모하고 감사하는 날이다.
이 행사를 최초로 제안한 캐나다 참전용사인 빈센트 커트니 씨는 이번 기념식에서 ‘전우에게 바치는 글’을 낭독했다.
비록 그와 함께 싸웠던 벗들은 부산의 유엔 묘지에 고요히 잠들어 있지만, 그분들이 지켜낸 자유와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 희생은 무엇보다 값지고 의미가 있다.
1분으로는 경의와 감사를 나타내기에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묵념을 통해 그분들의 기억을 이어받고, 나아가 그분들이 남기고 가신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분들은 진정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싸웠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