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수기 필터에 따라 ‘물’도 ‘맛’도 달라진다

2020-11-28     이강진 웅진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
이강진
[이강진 웅진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 최근 지인이 나에게 ‘정수기 회사마다 자기네 필터가 우수하다고 홍보를 하는데 다 똑같은 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했다. 일반인들이 보고, 느끼기에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전문가인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답은 ‘아니오’다. 회사뿐 아니라 제품마다 들어가는 정수기 필터는 차이가 있다. 나는 지인이 이런 질문을 해오면 ‘제품마다 들어가는 필터 종류가 다르고, 회사에 따라서도 사용하는 정수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 상황에 맞는 필터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정수기는 동일한 필터들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가정용 정수기는 RO막 방식, 중공사막방식, 나노섬유 방식으로 구분된다. 어떤 필터를 핵심필터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수방식이 결정되고 이는 곧 성능의 차이가 된다. 중공사막 방식과 나노섬유 방식은 원리는 다르지만 성능은 유사해서 제조업체에 따라 둘 중 하나의 방식을 이용하므로 크게 RO 방식인지 중공사막/나노섬유 방식인지로 구분한다. RO막 방식은 삼투 현상을 반대로 적용한 것으로 삼투압보다 큰 압력을 가해 물이 농도가 옅은 쪽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즉 불순물이 많은 쪽에서 불순물이 적은 쪽으로 물이 빠져나가 깨끗한 물만 남게 된다. 일반적인 RO막 방식은 막의 크기가 0.0001㎛로 중공사막 방식의 막의 크기와 비교해 최대 1000배 이상 촘촘하고, 세밀하여 유기오염물질, 대장균, 중금속을 포함한 이온성 물질 등 다양한 성분에 대한 제거에 탁월하다. 대부분의 오염물질에 대한 제거성능이 우수하고, 물 맛이 상대적으로 깔끔하며 막의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미세정밀 여과에 따라 시간당 정수용량이 적어 직수식으로 사용하기 어렵고, 3가지 필터 중 가장 고가다. 중공사막 방식은 혈액투석을 위한 신장투석기에 사용하는 중공사를 응용한 것이다. 일반적인 중공사막 방식의 막 크기는 0.001~0.1㎛로 RO막 방식의 막과 비교해 오염물질 제거 성능이 낮다. 중공사막 방식은 입자성물질, 대장균에 대한 제거가 가능하다. 막 기공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정수용량이 커서 직수식으로 사용 가능하며 저수조가 필요치 않아 제품을 작게 만들 수 있고,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다만 이온성 물질 및 중금속은 제거가 어렵고, 물 속 이온성분에 대한 제거성능이 낮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텁텁한 물맛이 느껴질 수 있다. 또한 경도가 높거나 물 속 이온성분이 높은 원수에 설치 할 경우 정수 스케일이나 이물이 생길 수 있다. 나노섬유방식은 전기적 인력에 의해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장단점은 중공사막 방식과 유사하다. 입자성물질, 대장균에 대한 제거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성능도 좋으면서 소형의 정수기를 요구하는 소비자 니즈에 맞춰 유량이 큰 RO막을 적용한 직수식의 정수기도 개발되고 있다. 이처럼 정수기는 필터에 따라 오염물질 제거성능 및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용자의 사용 환경과 요구하는 부가기능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물 속의 입자성 물질이나 유기확학물질, 맛·냄새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RO막 방식이나 중공사막/나노 섬유방식 모두 적합하다. 그러나 질산성 질소, 중금속에 대해 걱정하고 있거나, 최신 뉴스에서 나오는 새로운 환경 오염물질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면 RO막 방식의 정수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물 속의 이온성 물질에 대해서는 중공사막/나노섬유 방식의 정수기로는 제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수 방식을 선택한 후에 제품의 부가기능과 디자인을 선택하면 된다. 점차 다양한 편의기능과 위생기능을 가진 정수기가 개발되고 있으므로 냉수, 온수, 얼음, 사물인터넷 등 고객이 사용 상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의기능을 추가적으로 선택하고 정수기 내부 물이 지나는 부분을 관리하는 위생 강화 기능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관리 업체의 위생 관리 역량 또한 위생적인 정수기 관리의 핵심이므로 놓치지 말자.  그렇다면 정수기의 품질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정수기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제조사가 광고하는 품질이 얼마나 근거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쉽게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인증 마크를 통해 품질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수기를 제조 및 판매하는 업자는 성능인증을 받고 ‘KC 마크’를 부착해야만 판매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법을 반드시 따라야 하므로, 국내에서 판매되는 정수기는 모두 법률적으로 정해진 수준의 품질이 보장된다. 국내법에 따른 필수 조건 외에 더욱 까다로운 품질 확인을 원하는 경우에는 해외 인증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북미지역에서 통용되는 ‘Gold Seal 마크’나 ‘NSF 마크’가 그것이다. 이 인증은 200여 가지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용출검사, 고압조건에서 구조평가 및 다양한 성능검사를 포함하는 까다로운 품질검사 기준인 NSF/ANSI standard에 기반하여 정수기를 평가한 후 마크를 부여하는데 용출안전성과 성능을 좀 더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각 방식 별로 성능이 다르기 때문에 인증을 받는 정수성능항목수도 다른데 일반적으로는 RO막 방식의 경우 성능 인증항목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마시고자 하는 목적으로 정수기를 사용한다. 간혹 중공사막, 나노섬유방식은 미네랄이 살아있는 물이라는 말을 사용해 건강한 물처럼 홍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이온성 물질을 거르지 못하는 것이지 미네랄을 선택적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미네랄이 유지되는 중공사막이나 나노섬유방식은 미네랄만 걸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이온류(중금속 포함)가 걸러지지 않는다. 미네랄은 유지되고 중금속은 걸러지는 것이라고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물에서도 미네랄을 섭취하면 더 좋겠지만 물로 섭취기준을 충족시키기는 힘든 반면 음식물로는 충분한 섭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수기 선택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아니다. 실제 2010년 발표된 논문(J. Korean Diet Assoc. 16(2), 116, 2010)에 의하면 시판 생수로부터 공급되는 미네랄은 한국인 미네랄 섭취기준의 0.4~1.0%에 불과하다고 결론 지은 바 있다. 물 속의 중금속이온과 미네랄이온(흔히 칼슘, 마그네슘)은 모두 이온성 물질이고 이들을 모두 제거하느냐 모두 제거하지 않느냐의 차이임을 명심하자. 추가적으로 심미적인 요소인 맛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의 기호에 따라 정수기를 선택할 수 있다. 정수기에서 걸러진 물은 필터 종류나 정수 시스템에 따라 맛이 다른데 필터 종류와 정수 시스템에 따라 물 속 유해물질에 대한 제거성능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물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통 RO막 필터로 거른 물이 중공사막이나 나노섬유 필터로 거른 물보다 이온 물질 제거에 탁월해 텁텁한 물맛이 날 확률이 낮다. 올해 3월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가 국내 주요 정수기 제품을 선별해 진행한 물맛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물은 RO막 필터방식의 제품이었다. 중공사막이나 나노섬유 필터를 사용한 다른 제품보다 물맛이 긍정적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물맛은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런 특성을 참고하면 본인이 원하는 물맛의 정수기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수기는 생명에 필수적인 물을 정화하는 제품이자 환경 및 수질오염이 심각해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가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정수기 디자인이 비슷하다고 해도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고 정수기 핵심인 필터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구매 전에 필터 종료, 성능, 부가기능, 물맛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꼼꼼히 살펴보고, 제품을 고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