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투잡 가장의 비극

2020-12-01     송병형 기자
송병형
지난 26일 밤 부산 사상구 강변도로에서 농산물을 배달하던 경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아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졸음운전이 사고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56살의 운전자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 낮에는 학원을 운영하고 밤에는 농산물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투잡족이었다.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 투잡을 뛴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투잡을 뛰는 가장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란 기치 아래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를 밀어붙인 후 투잡 가장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통계청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0월 투잡에 나선 가구주는 월평균 30만8412명으로,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가장 많았다. 투잡 가구주의 증가는 2017년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투잡 가장의 증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복가입자 현황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 중복가입자 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시작된 2017년 이후 확연히 늘었다. 매년 8월 기준으로 2017년은 2016년보다 1만8569명(증가율 11.0%), 2018년은 2017년보다 2만1376명(11.2%)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4만3613명(20.6%) 더 늘었다. 앞으로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투잡 가장이 나올 것이란 예측이 많다. 주 52시간제가 먼저 도입된 대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야근 수당이 줄자 임금 보전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압력이 커져 노동 시간당 임금은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규모 업체의 근로자들에게 이런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체에서는 여전히 낡은 임금 체계가 작동해 근로시간이 강제로 단축될 경우 근로자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우리 임금 체계는 그야말로 온갖 논리적 모순이 뒤엉켜 있다. 사측은 사측대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이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기본급을 최소화하면서 각종 수당을 덕지덕지 붙였고, 정부는 기본급을 줄일수록 세금을 덜 내게 하는 세제를 만들어 모순을 더욱 키웠다. 근로자들은 야근과 휴일 근로를 통해 소득을 높여야 했다. 이 상태에서 근로시간이 강제로 줄어든다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한순간 저임금 근로자로 전락하게 된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임금 체계를 미리 정비하는 게 수순이지만 현실은 근무시간부터 일단 줄이고 보는 식이다. 임금 체계를 손본다고 해도 회사가 감당할 여력이 있느냐가 문제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인력에 의존해 성장해왔다. 수출 물량이 몰리면 근로자들의 밤샘 작업이 며칠이고 이어졌고, 이를 통해 납품 기한을 맞출 수 있었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한국만의 경쟁력이 됐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첨단 자동화 시설로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대기업에서 주 52시간제가 안착돼가는 것도 이런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인력에 의존하는 생산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산업 구조는 그런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하청업체를 채우고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보존은 대기업의 고통분담 등을 수반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