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장군(將軍) 중 으뜸은 운짱(運將)이라”
2019-12-04 문수호 기자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군사를 이끄는 뛰어난 장군을 일컫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초한지의 항우와 같이 용맹스러운 장군을 뜻하는 용장(勇將)이 있고, 지략을 겸비한 한신과 같은 지장(智將)도 있다. 또한 유방과 같이 덕을 갖춘 덕장(德將)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이라 할 수 있다.
명장들의 서열을 가릴 순 없지만 용맹한 장수는 지혜로운 장수를 못 이기고, 지혜로운 장수는 덕망 있는 장수를 못 이기며, 덕망 있는 장수는 운 좋은 장수를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용맹함과 지략은 물론, 인덕을 갖춘 명장이라 할지라도 운이 좋은 장수에겐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직장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고, 근태와 인품 역시 평가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임원이라는 계약직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소위 '운도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직장인이 고위직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이 필요하다. 수는 많지만 자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실력도 중요하고, 근태와 사람의 됨됨이, 심지어 아부 능력도 승진에 중요한 요소다.
아부는 우습게 볼 요소가 아니다. 한 중소기업의 전문경영인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일 잘하는 놈보다 아부하는 놈이 더 이뻐 보여”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아부가 승진의 모든 요소가 될 순 없겠지만, 비슷한 조건이면 이뻐 보이는 놈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요소 중 제일은 ‘운’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이란 무엇일까? 한 철강기업의 전무는 자신을 운 좋은 사람이라 칭했다. 자신이 자동차강판 판매를 맡았을 땐 자동차 산업이 호황이었고, 다른 부문을 맡았을 때도 그 제품의 시황이 항상 호황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매년 장사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여건에 따라 시황이 작용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자신이 맡았을 때 이러한 운이 나쁘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과 고니의 대화 중에 이러한 장면이 있다. 고니가 스승인 평경장에게 화투를 배우는 중 “스승님이 최고라면 왜 이런 집에서 사세요?”라고 묻는데, 평경장의 대답은 이러하다. “내가 땅을 사면, 꼭 그 땅만 값이 떨어져”
요점은 재수가 없었다는 거다. 물론 모든 것을 운으로 평가할 순 없다. 진짜 실력은 호황일 때 남보다 좀 더 실적을 좋게 내고, 불황일 때 남보다 좀 더 손해를 덜 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능력은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 능력이 없는 이가 한 사업을 담당해도 호황일 땐 티가 많이 나지 않는다. 대기업의 영업은 일련의 판매 프로세스가 정형화되어 있는 만큼, 신규 수요 창출이 아닌 이상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시황이 좋건 나쁘건 간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실적이 나빠진 것을 모두가 안다고 해도, 그 책임이 미뤄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과 같이 산업계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각 기업의 임원과 책임자들은 어떻게 보면 운이 없는 이들일 수도 있다. 인사철이 되면 걱정부터 앞서기도 한다. 내가 아는 임원이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까?
하지만 진짜 실력이 있는 이라면 운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인정받기 마련이다. 산업계가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모두 힘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