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소득 주도 빈곤
2020-12-10 송병형 기자
하버드대의 로버트 배로 교수가 한 일간지에 기고를 올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직격탄을 날렸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닌 ‘소득주도빈곤’이라는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포퓰리즘 정책으로 과거의 성공을 낭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로 대표된다. 최저임금 문제는 이미 내년도 최저임금을 사실상 동결하면서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사람 중심 경제’를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 주 52시간제는 여러모로 매력적이었다. 노동계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는 일이자 과로 문제와 일자리 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었다. 정부는 주 52시간제로 한 사람이 하던 과도한 업무를 나눠 추가 고용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워라밸(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 시대를 앞당기는 혁신으로 여겼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에 힙 입어 2018년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존 근로기준법에서 주당 법정근로시간은 기본 40시간에 연장근무 12시간이었다. 언뜻 보면 주 52시간제였지만 근로일을 일주일로 명시하지 않아 토요일·일요일 각 8시간씩 16시간의 추가 근로가 허용됐다. 최대 68시간이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근로일을 일주일로 명시, 최대 주 52시간 근무를 명확히 했다.
정부는 새로운 근로기준법을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우선 적용하고, 2020년 1월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 2020년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업체에 적용하기로 했다. 2년이면 모든 근로자가 행복한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근로자의 천국은 법 하나 바꾼다고 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상 법을 바꾸고 나니 고난의 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장 준비가 잘 돼 있다는 대기업조차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호소했고, 정부는 9개월의 준비 기간을 더 줬다. 그 준비 기간에 기업들은 정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2월 대기업의 취업자 수는 245만 9000명으로 주 52시간제 도입 직전인 2018년 6월보다 10만 6000명 줄었다. 알고 보니 근로시간 단축으로 야근 수당이 줄자 임금 보전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압력이 커져 노동 시간당 임금은 증가했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인력을 되레 감축한 것이다.
대기업의 사정이 이러니 그보다 경영 여건이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영세 업체에 주 52시간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모순투성이의 임금체계와 낮은 노동생산성, 종속적 하청구조 등 대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장애물을 넘어야한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지만 시간은 없다. 정부는 최대 1년 반 정도 시간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누구나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낮은 임금과 초과 근무가 유일한 경쟁력인 직장이 상당수다. 무작정 연봉을 올리고 워라밸을 실현하라고 강요하면 당장 직장인의 표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 표는 직장을 잃은 이들의 성난 민심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