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세습 비판 속 2·3세 경영 승계 본격화…보수 이미지 벗을까

한국콜마·보령홀딩스·유유제약 등 3040대 오너 2·3세 승진 인사 줄줄이, 지분도 확보 창업주 폐쇄적 경영방식 혁신·변화 기대… 경영 미검증·세습 경영 비판 여론도 풀어야

2020-12-26     김아라 기자
윤상현
[매일일보 김아라 기자] ‘아버지가 일군 회사의 미래가 이제 아들과 손자에 손에 달려있다.’ 최근 제약사들이 오너 2·3세의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는 오너 2·3세가 3040대 젊은 피로 수혈되는 만큼 좀처럼 변하지 않는 보수적인 제약업계에 변화·혁신 새 바람이 불지 기대감을 내비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습 경영’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보내고 있다. 이에 이들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질 전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제약사들은 오너 2·3세에 대한 승진 인사와 함께 회사 지분 매입이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먼저 보령제약그룹 지주회사인 보령홀딩스는 최근 임원 인사를 통해 김정균(34) 운영총괄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오너가의 3세 경영을 알렸다. 전문경영인(CEO)인 안재현 보령제약 대표이사는 겸직하던 보령홀딩스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김정균 대표는 김승호 창업주의 장녀인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의 아들이다.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2011년 삼정KPMG에 입사했다. 이후 2014년 1월 보령제약에 이사대우로 입사해 전략기획팀과 생산관리팀, 인사팀장 등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 1월부터 보령홀딩스 사내이사 겸 경영총괄 임원으로 재직해왔다. 보령제약은 앞서 지난해 12월 김은성 보령홀딩스 회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보령제약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오너 3세인 김정균 신임 대표(당시 상무)에게 경영권 승계 절차를 밟기 위한 것 아니겠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인사에서 전문경영인(CEO)인 안재현 보령제약 대표이사는 겸직하던 보령홀딩스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또 보령메디앙스는 지난달에만 6만 7508주의 보령제약 지분을 처분해 보령제약 지분율을 5.27%에서 5.22%로 줄였다. 김 회장이 김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한국콜마도 최근 윤동한 전 회장의 장남인 윤상현(45) 총괄사장을 부회장으로 선임하면서 2세 경영을 알렸다. 윤 부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해 이사까지 올랐다. 여기서 퇴직한 후 2009년 한국콜마에 합류해 경영 일선에서 업무 경험을 쌓아왔다. 2016년에는 한국콜마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화장품과 제약사업 부문을 지휘하면서 지난해 4월 씨제이헬스케어를 인수를 주도했다. 윤 부회장은 한국콜마 입사 이후 꾸준히 지분을 늘려가면서 차근차근 승계를 준비해왔다. 업계에선 윤 부회장이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김병묵 한국콜마홀딩스 대표의 뒤를 이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유승필 회장의 장남이자 창업주의 3세인 유원상(45)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유유제약은 경영 승계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존 최대 주주인 유승필 회장과 지분율 차이도 1.24%에 불과하다. 유 대표이사는 미국 트리니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 2008년 유유제약에 상무로 입사해 2014년 영업·마케팅 총괄 부사장, 2015년 유유헬스케어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입지를 다져왔다. 줄줄이 2·3세 오너 교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제약사를 이끄는 회장들이 고령에 접어들면서 경영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2·3세들의 경우 유학, 다국적사 근무 등 해외 경험이 많아 세대교체를 주도하면서 회사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습 경영’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높다. 아직 경영이 검증되지 않은 데다 제약사 특성상 이전처럼 안주하기 쉽기 때문이다. 제약업계는 국내 사업이 주를 이루고 한 개의 장수 브랜드로 수십 년간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전문가보다 자식에게 맡겨도 사업에 큰 차질이 없다는 점에서 2·3세 경영의 배경이 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가 다른 업종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다는 점도 승계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제약사 대부분은 1950~1960년대 산업화 초기에 자수성가 형태로 탄생했다. 당시는 형제·자식에게 회사를 대물림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절이라 회사 지분의 대부분을 오너일가가 소유했다. 이는 오늘날 주요 제약사들이 취하고 있는 ‘대주주-지주사-자회사’ 형태인 수직계열화의 뿌리가 됐다. 이에 업계 한 관계자는 “경영 승계와 폐쇄적인 경영 스타일은 그동안의 국내 제약업계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라면서 “보수 이미지를 벗으려면 이들 스스로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등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