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제왕적 대통령제하 다당제 실험...연동형 비례 30석이 정치지형 흔든다
거대 양당제 대신 정치연대 통한 진영대결
한국 정치현실과 괴리 민주주의 후퇴 우려
2020-01-01 김나현 기자
[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소수정당의 원내 의석 확보에 유리한 연동형 선거법으로 인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 극렬한 대립으로 정치가 실종된 데 따른 후폭풍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치에 본격적인 다당제 시대가 열릴 전망이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강력한 야당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양대 정당을 대신해 진보와 보수 진영 정당 간 대결 구도는 여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비례한국당·비례민주당 등 정치적 꼼수가 난무하게 돼 결국 과거 제도로 회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후보 단일화는 없는 정면승부 속출
4.15 총선에 적용될 새 선거법은 기존 47석의 비례의석 중 30석에 한해 연동률 50%를 적용한다. 이 30석으로 인해 정당투표가 이전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지역구에서 이미 정당 지지율을 넘어서는 의석을 확보한 거대 정당들은 추가 의석 확보가 봉쇄되고, 나머지 정당들이 30석을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같은 진영 내에서도 이전의 후보단일화와 같은 선거 연대가 사라질 전망이다. 실제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총선 연대 가능성을 일축했고, 민주당도 여권 내 원심력 확산을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여권에서는 “단일과 가능성은 제로”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보수통합론 힘 잃어...신당 우후죽순
원심력은 보수통합이 화두이던 보수 진영 내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한때 가시화될 듯하던 통합 움직임은 선거법 통과와 맞물려 구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신 정파마다 신당 창당 작업이 한창이다. 유승민 의원은 새로운보수당을, 이언주 의원은 ‘미래를 향한 전진 4.0’을, 이정현 의원 역시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이다. 창당을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이재오 전 의원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국민통합연대라는 모임을 시작했고,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이끄는 새한국의비전도 활동에 들어갔다.
보수통합론이 힘을 잃은 것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을 두고 정국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흐른 것도 크게 작용했다. 황교안 대표가 이끄는 한국당은 대여 강경 투쟁이 길어지면서 극우 노선으로 치우쳤고, 개혁보수를 표방한 유 의원 측과는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유 의원은 지난달 29일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명분도 철학도 없이 걸어가면 한국당이 총선에서 대승하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식으로 통합하면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안 준다”며 “지금 마음을 정한 유권자, 민주당·한국당·정의당의 골수 지지자 몇 분을 빼고는 (마음이) 열려있다”고 했다.
▮연동형 도입에 민주주의 후퇴 우려
이처럼 한국 정치사에 본격적인 다당제가 태동할 분위이기지만 옳은 방향으로의 변화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나들며 정치판을 짜 온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제도 자체가 독일(연동형 선거제의 본고장)은 내각제를 하는 나라고, 우리는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라며 “민주주의 발전에 오히려 역효과가 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혼란이 불 보듯 하다는 것이다.
실제 벌써부터 연동형 비례의석을 겨냥한 위성정당의 출현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당은 이미 위성정당 창당 절차에 착수했고, 민주당 역시 언제 만드느냐의 결정만 남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연동형 선거법의 명분이 된 다당제 역시 왜곡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겉모습만 다당제일 뿐 실제로는 양당제에서의 대결정치가 진보정당들과 보수정당들 간 대결 구도로 옮겨져 진영 대결은 여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주고받기 식 정치연대가 횡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는 선거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져 약 50만 명이 새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특정 정당의 유불리와 직접적 연관을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2005년 선거 연령이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낮아졌을 때에도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