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의 백수탈출] 꼰대와 펭수
2020-01-01 매일일보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2030세대와 기성세대 간 충돌이 잦다. 비단 직장생활만이 아닐 것이다. 가족에서 시작해 사회 전반에서 세대 간 충돌이 벌어진다. 세상은 기성세대가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러나 2030들은 이 꼰대의 세상에서 생존법을 찾아내고 있다.
‘꼰대’로 불리는 기성세대는 ‘내 나이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런 꼰대들을 향한 청년들의 속 시원한 일갈이 ‘라떼는 말이야’이다. 말이 안 통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면서도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재치가 묻어나는 표현이다. 그래선지 ‘라떼는 말이야’라는 이름의 과자까지 출시됐다.
지난해 ‘라떼는 말이야’라는 표현과 함께 2030세대를 열광시킨 캐릭터도 함께 등장했다. 바로 ‘펭수’다. 펭수는 EBS가 낳은 캐릭터이다.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를 쓴다. 키 210㎝의 자이언트 펭귄이다. 우주 대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남극에서 스위스를 거처 요들송을 배우고 인천 앞바다까지 헤엄쳐왔다. 나이는 열 살이다. 오디션을 거쳐 EBS 연습생으로 발탁됐다.
펭수는 인간세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며 성역할 고정관념도 거부한다. 남자 친구도 여자 친구도 없다. 따라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성별에 따른 성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부정한다.
또한 한국 특유의 수직적 인간관계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소속사 사장을 경칭 없이 부르며 “밥 한 끼 합시다”라고 외친다. 돈이 필요할 때는 거리낌 없이 소속사 EBS 사장에게 요구한다. 후배 군기를 잡겠다고 전화하는 EBS 선배의 전화는 무시한다.
펭수는 매니저와의 내기에서 이긴 뒤 삭발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며 소송을 걸기도 한다. 재판을 맡은 어린이들은 ‘약속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연출인 매니저는 ‘을’로서 ‘갑’인 선배들 앞에서 거부의사를 밝힐 수 없었다고 호소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펭수는 당돌하면서도 선을 넘는 듯 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다. 황당한 일이 벌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가슴이 뻥 뚫리는 사이다 발언이다. 펭수의 어록을 보면 꼰대식 사고방식을 뒤집는 ‘안티꼰대’가 주류를 이룬다. 나이나 권위, 편견을 앞세운 기성세대에 주눅 들거나 고개 숙이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펭수의 꼰대 퇴치 신공이 2030의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다.
보건복지부 유튜브 계정은 남극에 두고 온 가족을 보고 싶다는 펭수에게 가족사진 일러스트를 선물했다. 성 중립적 외모를 가진 펭수와 달리 일러스트의 가족은 외모부터 구성까지 전형적이었다. 수염자국이 거뭇거뭇 난 아빠와 뒷머리 쪽을 찐 엄마,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는 동생까지 있었다. 전통적 성역할에 따른 4명의 ‘정상가정’으로 구성된 가족사진 일러스트였다. 펭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저 동생 없는데요”라고. 펭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달라는 이유였을 것이다. 팬들은 이러한 펭수에게 환호한다.
펭수의 인기에 올라 따려 했던 보건복지부의 꼰대다운 계획은 무참히 무너졌다. 나를 포함한 꼰대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 펭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