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북촌 계동길

2021-01-09     매일일보
지난해 북촌 계동길을 처음 걸었다. 유명세로 인해 동네 모습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70~80년대의 정취가 남아 있었다. 세탁소, 방앗간, 목욕탕, 분식집 등 작은 가게들 앞마다 상점 주인으로 보이는 흑백 초상 사진이 전신 크기로 걸려있었다. 골목길 자체가 전시장과 같은 느낌이었다. 계동길을 전시장으로 만든 주인공은 이곳에 자리한 물나무사진관의 김현식 사진가이다. 물나무사진관은 흑백사진을 옛날 방식 그대로 현상하고 인화하는 구식 사진관으로 아직도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곳이다. 이곳은 폴라로이드 기념사진을 처음 만든 곳이라고 한다. ‘마을의 정체성은 사람이 중심인 풍경’이라는 게 김현식 사진가의 지론이다. 그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 상점의 홍보보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삶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자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며 작은 골목 상권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김현식 사진가의 작업은 계동길에서 그치지 않고 군산으로 이어졌다. 군산은 계동길보다 시간의 자취가 더욱 진하다. 근 100년의 시간이 한 데 녹아있다. 일본으로 향하는 조선의 쌀들이 쌓여 있었던 미곡 창고, 그 창고를 관리하던 일본 관리가 살았던 가옥 등 일제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 해방 후 미군 주둔지에서 흘러나온 군부대 옷가지를 팔며 호황을 누렸던 시장과 그 시절 손님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던 유흥업소도 남아 있다. 이처럼 한 때의 영화를 간직한 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에서 사진가는 아련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수십 년 동안 같은 장소를 지키며 변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지켜온 군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흑백사진에 담아냈다. 그가 만든 도록 표지에는 골목의 지도와 가게의 이름이 아닌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솔 이용원, 승리인쇄소, 동경정육점, 군일유리 등 뿌리내린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정겨운 상점 상인들의 목소리를 그들의 흑백 초상사진과 함께 담았다. 부동산 투기 논란을 불렀던 어느 국회의원의 방식만이 과거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고 생기를 불어넣고 우리 시대와 공존하게 만드는 길은 아닐 것이다. 역사 문화의 상품성 이전에 그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도 효과적인 방식이 아닐까. 북촌 계동길과 군산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져본다.
아트에이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