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저격수의 급수

2021-01-19     송병형 기자
송병형
#1. 2차대전 기간 구소련의 핀란드 침공으로 발발한 겨울전쟁에서 단 한 사람의 핀란드군 저격수가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1939년 11월 30일 전쟁 발발 당시 소련 침공군의 규모는 보병 46만여명에 전차가 3200여대, 항공기는 3800여대에 달했다. 반면 핀란드군은 총동원령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무장의 보병 35만명이 전부였다. 전력의 핵심인 전차는 단 33대만이 기동 가능했고, 항공기 역시 100여대에 불과했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전력 차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소련군은 혹한과 지형을 활용한 핀란드군의 게릴라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 저격병들이 맹활약했다. 특히 시모 해위해는 100여 일 동안 600명 가까운 소련군을 저격해 소련군의 발을 묶었고 ‘하얀 사신’으로 불리며 공포로 군림했다. 비록 핀란드는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국가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2. 정치판에서도 저격수들은 맹위를 떨친다. 임한솔 전 서대문구의원은 ‘전두환 저격수’로 최근 유명세를 탔다. 그 유명세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임 전 구의원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구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는 총선 출마의 당위성에 대해 전씨 추적에 있어 기초의원 권한의 한계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그의 출마를 허용하지 않았고, 그는 탈당했다. 정의당은 그의 저격 활동 자체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듯하다. 정의당 관계자는 언론에 “비례대표 출마가 이뤄지지 않자 구의원을 사퇴하겠다는 건 개인적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출마 명분으로 내세운 전씨 추적 건에 대해서도 그간 당과 소통하지 않는 단독 행동이 많았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임 전 구의원이 향후 전씨 저격수 활동을 계속하더라도 그 위력은 예전만 같지 않을 것이다. #3.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조국 사태 이후 진보 진영의 주요 인사들을 저격 중이다. 현재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진 전 교수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진 전 교수의 파괴력은 임 전 구의원과는 ‘급수’가 다르다. 그 자신이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인 만큼 누구보다 진보 진영의 실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총선 출마를 선언한 정봉주 전 의원을 향해 “무고죄가 무죄 나온 걸 내세워 성추행은 없었다고 하고 싶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했다. 방송인 김어준 씨를 향해서는 정 전 의원이 한 말이라며 “(영화 ‘더 플랜’ 제작을 위해) 20억원을 모았지만 제작비 20억원과 영화의 품질 사이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당연히 착복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그 돈으로 외국으로 놀러 다니고 온갖 사치를 다했다. (정 전 의원은 김씨를) ‘그 XX, 언젠가 돈 때문에 망할 거야’라고 했다”고 전했다. #4. 내부 고발자를 뛰어넘는 저격수도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문 대통령은 올 신년기자회견에서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되어야 하듯이 장관과 대통령의 인사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했다. 2012년 대선후보 시절 과거의 자신은 “MB(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며 미래의 문 대통령을 저격했다. 문 대통령은 또 2017년 2월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막히자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현재 청와대는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