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여러 언론이 강남 일부 아파트의 ‘호가’ 정보를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집값이 오를 때는 ‘오른다’고 2018년 9·13대책 이후 집값이 하락할 때는 ‘거래절벽’이라며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 건설사가 대주주인 언론일수록 이런 경향은 심하다.
새해 벽두부터 한 경제지는 오피니언 리더 100명에 대한 신년기획 설문조사 결과라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가 크게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도대체 그 100명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경제지에서 기사를 내보낸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고도 남는다.
분양가 상한제 등 온갖 규제를 풀어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높임으로써 건설 자본에 천문학적 이익을 남겼던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의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비가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에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문재인 정부의 주거 정책이 실패할 때까지 계속 ‘실패한다’라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수많은 기사를 반복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쯤 되면 비판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는 투기 세력과 싸움에서 여러 차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 12월에는 세입자의 주거권 보호를 위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를 도입하는 대신 ‘임대등록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임대등록 시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배제 등 다주택자에 과도한 혜택을 부여했다. 2018년 7월에는 미온적이라 평가받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권고안에서도 후퇴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을 내놓았다. 투기 세력의 우려는 안도로 바뀌었다.
2019년 8월에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예고했으나 10월에는 6개월 유예, 11월에는 일부 지역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계속 후퇴했다. 시장에 의해 ‘정부가 머뭇거린다’는 신호로 읽히는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릴 때마다 서울의 초고가 아파트 단지는 최고가를 계속 경신했다.
‘과감한 개혁 조치로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정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후속 조치를 통해 정부가 잘못된 의사 결정을 계속 바로잡고 있다는 점이 간과된 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임대등록에 대한 과도한 혜택은 조금씩 축소되고 있고, 종합부동산세는 강화되고 있으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은 확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무력화시켰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되살렸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청약 제도를 개편했으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및 보유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오랜 준비를 거쳐 임대소득에 대한 전면 과세 도입이 예정돼 있다.
2020년 신년사에서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직 문재인 정부 주거 정책의 실패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국회에서의 법률 개정을 통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어도 함부로 흔들 수 없는 근본적인 개혁을 이룰 시간은 남아있다.
지금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 월세인 상률 상한제를 도입하고 주택법 개정으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전국적으로 의무 시행하는 등 개혁을 향한 중단없는 전진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