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전략연구실 연구위원] “끼리끼리는 과학”, “유유상종은 사이언스”는 인터넷 댓글에 관용구처럼 쓰인다. 맞는 말이라며 웃게 되지만, 오랫동안 이론과 실제로 증명된 웃을 수 없는 관측결과이기도 하다. 노벨경제학 수상자 토머스 셸링의 1978년 저작 ‘미시동기와 거시행동’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살고 싶다, 아니 살면 좋겠고 아니어도 괜찮다” 정도의 작은 욕망이 자연스럽게 인종이 구분된 주거지라는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예측 모형을 그렸다. 거주민들은 “나와 다른 인종과는 살 수 없어!”라고 외치는 듯한 최종 분리 형태를 보고 억울하겠지만, 어쨌든 그 약간의 미시적인 선호가 인종, 계층, 성별, 가치관에 따라 주거지를 나누고, 사람을 가르고, 집단을 형성한다.
하지만, 끼리끼리보다 서먹서먹이 좋을 때가 있다. 다름에서 오는 서먹서먹함은 긴장과 비용을 유발하지만, 일자리를 찾을 때, 소개팅을 주선할 때 아주 잘 아는 사람보다 그저 이름만 아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소개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어머님이 지하철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손주의 보육도우미를 소개받았다는 식이다. 1973년 발표된 마크 그래노베터의 “약한 끈” 이론으로, 강하게 연결된 사이는 공통의 관계는 강력하지만 새로움이 없어 탐색에 한계를 보이나, 약한 연결은 강연결군을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까지 탐색을 가능케 한다.
비슷함에서 오는 안정감과 저비용은 우리를 늘 비슷한 영역, 비슷한 사람, 비슷한 논리에 안주하게 만든다. 하지만 비슷함이 지나치면 새로움은 사라진다. 기존의 배경, 기존의 생각, 기존의 방식과 다른 시도가 이루어질 때 변화가 감지되고 혁신이 잉태된다. 그러기 위해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 내가 하는 것과 다른 일, 먼 곳에서 전해온 소식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인 제이콥스, 리처드 플로리다 같은 도시경제학자들은 대규모 도심지의 다양한 인간군상이 가진 혁신의 힘을 강조했다. 서로 다름에서 오는 충돌이 축복이 된다.
얼마 전 ‘우아한형제들’이 외국기업에게 높은 가격으로 인수되었다. 최종결과 여부와 각종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국내 창업생태계의 한 획을 그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획은 ‘우아한형제들’의 노력에 기인한 바가 크겠지만, 그동안 우리 창업생태계가 벤처로 대표되는 그간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화되어가는 현상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최근 ICT 분야 스타트업의 조사자료를 훑어보니, 벤처기업들은 여전히 많은 수가 제조업(42%)이었으나 최근의 스타트업은 제조업(5%)이 아니라 서비스업(26%)에 집중하고 있었다. 팀으로 창업하는 비중도 높고(25%→37%), 여성 창업자의 비중도 높아졌으며(7%→13%), 이전에 창업을 경험해 본 창업자도 많아졌다(32%→45%)1). 다양성의 증가가 통계자료로 보일 정도라면 실제로는 더 큰 변화가 있었을 거라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인간의 미시동기는 자연스럽게 유사성을 선호하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북돋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다양함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지, 그 다양함을 새로움과 뛰어남으로 얼마나 잘 이해하고 치환할 수 있는지가 그 사회의 힘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하고, 정책 입안 시 찬성과 반대 이론이 충분히 설명되며, 스타트업 생태계에 듣도 보도 못한 괴아이디어가 쏟아지는 것은 비록 다름에서 오는 긴장을 유발하겠으나, 이러한 충돌을 북돋고, 충돌에서 오는 혼란을 정리하면서 사회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은 우리가 지금보다 더 성장할 기회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다양성은 충돌하며, 사회는 공정하고, 누군가의 추락은 모두 함께 받쳐준다. 우리 사회가 가진 ‘서로 다름’과 ‘다르지만 신뢰하는 믿음’의 크기에 따라 정치, 교육, 경제, 그 어느 분야든 자라거나 혹은 멈출 것이다. 서로 달라 복 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