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사에도 한 획 그은 '기생충', 의미는?
'영어우선주의' 타파한 최초의 비영어권 영화 황금종려상과 동시 수상도 64년 만의 쾌거
[매일일보 이재빈 기자]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등극은 한국 영화사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백인들의 잔치', '영어권 로컬 시상식', '백인 오스카' 등의 오명을 달고 살던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서양 중심의 영화산업에 경종을 울려서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권위인 작품상을 필두로 감독상과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명실상부 올해 최고의 영화로 우뚝 선 것이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지만 아카데미의 벽은 높았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6),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2012), 이준익 감독의 '사도'(2015),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 등이 출사표를 냈지만 후보 지명조차 받지 못 했다. 지난해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예비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최종 후보에는 들지 못 해 또 다시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바 있다.
한국영화로서는 후보에 지명된 것도, 수상에 성공한 것도 최초인 기생충은 세계 영화계에도 일격을 날렸다.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오스카 작품상을 받아서다. 업계에서는 그간 외국어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오스카가 새 역사를 쓸지, 아니면 기존 전통을 고수할지에 관심을 보여 왔다.
오스카의 '영어우선주의'는 100년에 달하는 악습이었다. 91번의 시상식 동안 단 한 번도 비영어권 감독에게 감독상을 수여한 역사가 없어서다. 앞서 봉준호 감독도 이를 두고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닌 로컬영화제"라고 일갈한 바 있다. 비단 감독상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매한가지였다. 이날 기생충이 거머쥔 상 중 하나인 각본상은 17년 만에 비영어권 국가에 돌아갔다. 아시아계로는 최초다.
그렇다고 기생충의 경쟁작들이 약체였던 것도 아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혔던 샘 맨데스 감독의 '1917'은 할리우드가 가장 좋아하는 부류 중 하나인 미국 전쟁 영화다. '아이리시맨'(마틴 스코세이지)과 '조조 래빗'(타이카 와이티티), '조커'(토드 필립스), '작은 아씨들'(그레타 거위그), '결혼 이야기'(노아 바움백),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 등도 지난해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었던 걸작들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것도 1955년 델버트 맨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마티'(1955년 황금종려상, 1956년 아카데미 작품상) 이후 64년 만이며 역대 두 번째다.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이 새 역사를 쓰자 외신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AP통신은 "오스카의 새 역사를 썼다"며 "기생충의 수상은 세계의 승리(a win for the world)"라고 평가했다. CNN은 "기생충이 경쟁작들에 비해 너무나 강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지금껏 오로지 11편의 국제 영화만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중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 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금껏 어떤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최고상에 후보로 오른 적이 없었다"면서 "기생충의 수상은 국제영화에 대한 아카데미의 관심이 증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