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변호사] 로펌보단 은행이 상대적으로 친근한 곳이어서 일까? VIP들의 생활법률에 대한 문의는 상속분쟁, 금전거래, 부동산 분쟁 등 실로 다양하다. 때로는 특정 분쟁에 대한 문의가 집중되는 시기도 있는데 요즘이 바로 그렇다.
2020년의 초반을 지나는 현재의 트렌드는 ‘부동산 매매계약 분쟁’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2018년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부쩍 많은 손님들이 부동산을 급하게 거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법률문제들에 대해 문의한다.
이것은 정부가 ‘조정대상지역 10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를 올해 6월까지 한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다. 짧은 시일에 거액이 오가는 부동산 거래를 예기치 않은 손해나 분쟁없이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법률상식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급하게 체결된 부동산 계약은 매도인과 매수인 간에 일면식 없이 이뤄지기도 한다. 매수인이 중개인을 통해 매수조건과 매물의 위치 정도만 확인하고, 가계약금을 입금한 후, 매매계약이 체결된다.
가계약금은 상대적으로 소액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급한 거래라고 해도 부담을 덜 느끼며 계약에 임한다. 그러나 이후 여러 사정으로 일방이 계약을 취소하려 하면서 뒤늦게 가계약이 결코 가볍지 않은 법률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단 취소하려는 쪽에서는 매매계약의 성립 여부부터 다툰다. 계약서 작성 없이 문자로 매수조건을 통보 받고, 이에 근거해 가계약금을 지급한 경우라도 법원은 당사자 간 합의만 있었다면 매매계약의 성립을 인정한다.
실질적으로 계약내용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가와 관련해 법원은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 등이 특정되고 중도금 지급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면 가계약서에 잔금 지급시기가 기재되지 않았고 후에 정식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매매계약은 성립”하였다고 본다(2005다39594).
결국 매물과 매매가액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명칭이 가계약이라도 계약이 성립된 것이다.
흔히들 매매계약을 해제(취소)하기 위해서는 매수인이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매도인이 계약금의 배액을 주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민법에서 계약금을 해약금으로 추정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가계약금’ 역시 해약금과 같이 기능하는 것일까?
예컨대 10억짜리 아파트를 매매하면서 계약금을 총 1억원으로 정하되, 가계약금으로 3000만원을 지급한 상황이라면 당사자들은 1억원과 3000만원 중 어느 쪽을 기준으로 매매계약의 해제에 대한 배상을 해야할까.
법원은 이에 대해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금원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3000만원)’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1억원)’이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매도인이 계약금의 일부로서 지급받은 금원의 배액(6000만원)을 상환하는 것으로는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본다(2014다231378). 따라서 약정계약금이 정해진 경우라면, ‘가계약금’으로 소액을 지급했다고 해서, 매매계약 해제 시 배상의 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례에서와 같이 의욕이 앞서 급하게 매매계약을 체결하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가계약금을 훌쩍 뛰어넘는 해약금을 부담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매매 계약서를 작성할 때, 가계약금, 약정계약금을 구분하여 정하고, 특약을 통하여 가계약금이 해약금의 기준이 되도록 해야한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법언처럼 일단 합의에 따라 체결된 계약은 내용대로 이행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 법의 시각이다. 따라서 혼란스러운 시기라도 계약을 할 때는 신중히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