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3이 대통령을 훈계하는 나라

2021-03-03     송병형 기자
송병형
요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과 이에 반대하는 대통령 지지자들의 청원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여러 청원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글이 하나 있다. 자신을 경기도 소재 일반고에 재학 중인 고3 학생이라고 소개한 청원인이 올린 글이다. 고3이면 생일이 빠를 경우 4.15 총선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어엿한 유권자다. 그리고 진영 논리에 빠지기엔 아직 순수한 나이다. 왜곡 전달을 피하기 위해 핵심적인 대목을 그대로 옮겨본다. “제가 아직 학생이라 배움이 부족하고 사회에 나갈 능력도 부족하여 대책방안이라 하기엔 모자람이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저보다 정치는 못하고 계십니다. 중국인 입국금지요?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들어올 사람 다 들어오고 중국에서 우리를 입국금지 했는데요. 참... 어디 인생사 할 짓이 없어서 중국공산당을 따라갑니까? 세월호 때 7시간을 그렇게 부들부들 떠시며 영화까지 내놨는데 설 연휴 잘 새시고 자신을 믿으라면서 짜파구리 파티하시는 모습, 메르스 때 청와대 대통령이 컨트롤타워라며 책임지고 물러나라 하셨는데 현재는 신천지 탓, 국민 탓, 지자체 탓, 의협 탓, 감염학회 탓, 그놈의 탓탓탓 하시는 모습 자라나는 저와 같은 청소년에게 좋은 본보기는 안 되시는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아직 미숙한 학생이 정치적 선동에 휩쓸려 함부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학생이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제시한 대응책을 살펴보면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된다. 참고로 이 학생은 지난달 27일 해당 청원을 올렸다. 이 학생이 가장 먼저 제시한 대책은 초중고교의 개학 연기를 3~4주로 늘리자는 것이다. 이 학생은 “같은 교통수단을 타고 같은 급식을 먹고 같은 화장실을 쓰고 같은 물품을 사용하는 학교 내에서 감염자가 나온다면 학교학생 뿐 아니라 학생의 부모님, 학원, 학원 내 다른 학생 등 3차 4차 5차 감염이 속출하게 됩니다. 수업일수고 대학이고 일단 살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정부는 이달 2일 정확히 이 학생이 지적한 이유로 유초중고교 개학을 2주 더 연기했다. 이 학생은 두 번째로 “코로나19 환자를 관리감독하는 병원을 지정해 자가격리하다 죽는 사례가 없게 해주십시오. 자가격리하다 죽은 신천지 환자의 뉴스를 보았습니다”라며 진단과 치료 체계의 대전환을 요구했다. 신천지 전수조사에 올인 하던 정부는 이달 1일 중증 환자가 자가격리 중 방치된 채 심지어 진단조차 받지 못한 채 죽는 일이 속출하고 나서야 잘못을 인정하고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자를 먼저 진단하고 치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학생은 마지막으로 정부 대응의 중요한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 학생은 “현금복지 많이 하셨지요? 정책도 많이 바꾸셨구요. 그렇게 많이 퍼주시더니 대통령님? 이런 국가위기상황에서 국고에 비상금이 없다는 게 저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갖다 바쳤다는 마스크와 방호복. 우리 국민들은커녕 당장 이 사태의 최전방에 나가 환자들과 함께 싸우는 의료진들이 사용할 기본적인 의료품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진짜 울분이 터지고 눈물이 납니다”라고 했다. 이 학생은 “부디 현명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라며 글을 맺었다. 청와대가 어떤 대답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물론 이 학생의 청원이 답변 기준인 20만명 동의를 충족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