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같은 어른 키덜트 족을 아시나요

‘현실 도피가 또 다른 유행 부른다’

2005-06-20     김윤정 기자

키덜트 브랜드 성인들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
취향 맞게 매장도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꾸며

[매일일보] 어릴적 부모님의 무릎에 누워 들었던 피터팬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동심을 일깨울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피터팬은 절대 성장하지 않는 젊음의 상징이다. 그는 왜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했을까?  이 사회에서 성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년시절 아이로 남아 있고 싶어하는 피터팬의 바람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꿈꾸는 소망이었을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선 ‘피터팬 증후군’이 유행했다.
성인이기를 피하기 위해 유아기적 성향을 고집하는 것이다.  2005년 현재, ‘피터팬 증후군’과는 다른 새로운 증후군이 들끓고 있다.  아이 같은 어른. ‘키덜트’가 그것이다.

키덜트 족은 이미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문화현상으로 우리 사회 속에 자리잡았다.
기술 문명의 발달로 점차 디지털화 되어가는 일상에 신물이 난 현대인들이 갑갑한 빌딩 숲을 벗어나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어린 시절의 향수를 추억하고 싶은 것일까? 몇 년 전부터 ‘키덜트(Kidult)’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아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adult’의 합성어로 ‘어린아이 같은 어른’을 뜻하는 이 신조어는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린이의 동심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트렌드를 뜻한다.무겁고 진지한 것 보다는 귀엽고 예쁜 것을 추구하는 현재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키덜트 족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 생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해주는 상품을 소비하면서 정서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키덜트 문화를 이야기할 때 캐릭터 산업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캐릭터 패션부분에 있어서 의류가 연령층에 상관없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대표적인 키덜트 브랜드인 ‘티니워니’는 곰돌이 캐릭터를 도입해 중고생은 물론 대학생과 20~30대 성인들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성인 의류 매장이지만 키덜트의 취향에 맞게 매장도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꾸며 놓아 한 번쯤은 들어와 보고 싶어 하게끔 한다. 현재 이대 강남 명동 코엑스 등에 매장을 두고 있다.키덜트 상품을 구매하는 김현진(29·중랑구 면목동)씨는 “깜직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재미있고 귀여운 소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줘 나이도 잊고 자주 구입 한다”고 말했다.이렇듯 키덜트 족이 연령층에 구애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하나의 소비주체로서의 큰 역할을 하고, 그들의 소비력이 증가함에 따라 여러 분야에서 이들을 겨냥한 상품들과 서비스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심각함을 거부하는 이들의 취향에 맞춰 기발한 상상력이 동원된 갖가지 아이디어 상품이 새롭게 출시되고 있으며 성인들을 위한 고가의 완구도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인 인형 ‘바비’를 모델로 한 브랜드 ‘바비스타일’은 주니어 패션 브랜드지만, 키덜트적인 성향을 가진 어른도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이 많아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입는 커플룩으로 구매하는 고객이 많다.의류 뿐만 아니라 화장품 분야에서 역시 키덜트 풍의 확산이 감지된다. 현대백화점 본점 아베다 매장에서는 크레파스 모양의 아이쉐도우와 갖가지 동물모양의 화장품을 출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현대백화점 이헌용 홍보팀장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거나 인생을 재미있게 살려는 성인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한 스타일의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키덜트 족을 위한 이벤트를 열고 여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어렸을 적 누구나 가지고 놀아본 인형 제품이 인기다. 예쁜 인형을 모으고 옷을 입히고 손질하고 단장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을 성인이 된 후에도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이 바로 키덜트 인형족이다.  이들이 수집하는 인형은 바비, 제니, 일반 마론 인형에서부터 각 관절을 공과 고무줄을 이용해 움직임이 자유로운 구체관절 인형 주물을 떠 도자기로 구워낸 ‘비스크’ 인형, 큰 머리와 깜직한 표정을 가진 ‘블라이스’ 인형까지 다양하다인형족은 주로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데 각종 사이트의 인형 동호회, 개인 홈페이지는 수백 개에 달한다.활동범위가 넓어지면서 인형을 구입할 수 있고, 인형 옷 등 각종 용품들을 판매하는 관련 사이트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핵가족화하면서 외동으로 자란 20~30대 여성들이 인형족을 대표하지만 남성들도 30%안팎에 이른다는 것이 마니아들의 설명.“어릴 적 인형에게 가졌던 애착과 비슷해요. 남달리 내 인형을 아름답게 꾸며주면 마치 내 자신이 아름다워진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일종의 대리만족인거 같아요.” 인형사이트에서 만난 한 인형마니아가 밝힌 인형을 좋아하는 이유다.인형족들은 인형에게 화장을 해주며 빗질을 해주는 등 자신의 아이처럼 인형 가꾸기에 정성을 쏟는다.3만~6만원짜리 인형 가발, 10만원을 호가하는 인형드레스, 인형용 고급속옷에도 과감하게 돈을 쓴다.전문가들은 일부 키덜트 상품은 고가이기 때문에 자칫 사치스럽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어린이와 성인의 경계에 있는 키덜트 족이 동시에 두 문화를 취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더불어 관련산업도 꾸준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키덜트 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복잡하게 변화해 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빡빡하게 짜여진 일상을 거부하고 환상의 세계를 동경하는 성인들의 일탈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이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생존경쟁과 사회의 각박함에 식상해 순수했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릴 원한다.이와 관련, 사회학자들은 “그들은 순수함과 성인의 이성을 동시에 지닌 우리 세대의 새로운 문화 주체”라며 “‘드러내놓고 즐기는 문화’와 남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의견과 행동이 중심을 이루는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키덜트 문화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