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바이러스는 정치를 모른다

2020-03-12     송병형 기자
송병형
1633년 6월 22일 로마 카톨릭의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소에서 자신이 주장했던 지동설을 철회하고 나오면서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혼잣말이었다니 발언의 진위가 의심되지만 당시 상황이나 갈릴레이의 성정을 감안하면 적어도 그의 심중을 대변하는 말로 여겨진다. 비록 정치권력에 굴복했지만 그렇게라도 반항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처음부터 교회의 탄압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갈릴레이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는 교황부터 예술과 학문의 수호자를 자처했고 지동설에도 열린 입장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촉발된 30년 전쟁은 교회 내부에서도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을 낳았고, 지동설이라는 과학적 진리는 정치 논리의 희생양이 됐다.  과학 위에 정치가 군림하는 일은 생명 복제와 우주 탐사가 가능해진 21세기에서도 여전하다.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앞서 경고하고 예방하는 데 앞장서야할 WHO(세계보건기구)는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사실상 코로나19의 대유행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WHO 사무총장은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상황에도 “비상사태를 선포하라”는 여론을 무시했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포가 미국과 유럽 전역을 뒤덮은 뒤에야 팬데믹(대유행)을 선포했다. 세계 최대 규모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는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청원인들에게 “중국의 노예”로 불린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도 과학 위에 정치가 군림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시적으로 중국발 입국을 막아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고, “머지않아 코로나가 종식될 것”이라고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펴는가 하면, 국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오기 몇 시간 전 ‘짜파구리 오찬 파안대소’로 실책에 실책을 거듭했던 대통령은 스스로 정치적 내상이 깊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방어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은 11일 청주의 질병관리본부를 찾아 “질본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증상자를 찾아내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검사를 해서, 감염을 확인하면 적절한 치료로 사망률을 낮춘 것에 국제사회가 평가하고 있다. 빠른 속도를 내는 진단 키트와 시약, 자가관리 앱을 활용한 특별입국 절차는 전면 입국금지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도 바이러스를 막아내고 있다”며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게 아니라 세계가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질본은 좀 더 자신있게, 당당하게 질본이 이룬 성과를 말씀해도 좋다”고 했다. 또 “질본은 칭찬받고 격려받을 자격이 있다. 질본에 대한 칭찬과 격려는 국민 스스로에 대한 칭찬과 격려이기도 하다”고 했다. 대통령은 질본을 격려하는 형식으로 말했지만 실은 자기 변호였다. 본인의 실책은 인정하지 않고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다는 비판 여론에 대한 우회적 반박이었다. 이런 식의 자기 변호가 일시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는 있겠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정치를 모른다. 대통령이 과학이 아닌 정치로 계속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려 한다면, 정치를 모르는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대통령에게 더욱 큰 시련을 안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