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전한 게임문화는 어떤 문화를 의미하는가?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심리학 박사

2020-03-15     기고

[매일일보 기고] 정부통계에 의하면 게임은 전국민의 66%가 즐기는 중요한 대중문화로 이미 자리 잡았다. 코로나19로 장기간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요즘, 게임은 지루하지 않게 어려운 시절을 함께해주는 고맙기까지 한 매체다. 그러나 이런 게임에 대한 법제도는 국민들의 수준에 한참 뒤쳐진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12조에 정부의 정책추진 목적으로 ‘건전한 게임문화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무언가 당연한듯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찜찜함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문뜩 발견한 것이 ‘건전’이란 수식어다. 습관적으로 사용해온 ‘건전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건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의미가 나온다. 하나는 ‘병이나 탈이 없이 건강하고 온전함’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사상이나 사물 따위의 상태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상적이며 위태롭지 아니함’이라고 나와 있다. 건전의 첫 번째 의미는 건전한 음주문화, 건전한 유통질서와 같이 개인의 심신의 건강 혹은 사회적 제도의 안정성과 관련된 의미다. 두 번째의 의미는 건전한 사상과 같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다. 기준에서 벗어난 생각을 건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어느 쪽의 의미이건 게임문화에 건전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은 지극히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게임을 많이 해서 병이나 탈이 생긴다는 것은 마치 게임을 술, 담배와 같은 물질로 취급하는 잘못된 접근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밤낮없이 게임실력 연마를 하는 프로게이머들은 큰 문제가 생겼을 테니 말이다. 혹여 학업이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게임이 문제가 되는가? ‘과거 게임이 없었을 때는 학교에 잘 다니고, 직장에서 직무에 다들 열심히 했는가’ 반문할 필요가 있다. 역으로 게임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학교와 직장에 잘 다니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일 텐데, 그렇다면 더더군다나 게임을 많이하고, 적게하고는 건전함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많지도, 적지도 않게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의문이 생긴다. 바로 두 번째 건전함의 의미와 이어진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는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법률적으로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건전함을 판단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과거 군부독재시절 ‘건전 가요’라는 것을 만들어 음반마다 꼭 삽입한 적이 있었다. 사회질서 유지라는 목적으로 통행금지를 만들고, 두발을 단속하고, 길거리 여성들의 치마에 잣대를 들이대어 길이를 재던 시절의 관행이다. 과연 이런 사회가 건전한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직선제 개헌이라는 민주화가 되면서 ‘건전가요’라는 규제가 풀렸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서태지와 아이들, HOT와 같은 케이팝문화가 생겨날 수 있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기생충’을 건전함이라는 잣대로 심판하였다면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문화적 활동에 건전함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반증 이외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어떤 의미가 되었든 게임 앞에 건전함이란 수식은 합당하지 않다. 과거 어두웠던 시절의 관행이 이어져온 흔적이리라 믿는다. 이제는 이런 관행을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게임을 즐기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모독하는 행위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