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코로나와 환율 그리고 민족주의

지난 리먼 외환위기때 일본 통화스와프 불씨 살려야 홍남기 경제컨트롤타워 환율위기 심각성 인지해야

2021-03-17     이승익 기자
이승익
[매일일보 이승익 기자] 지구촌이 ‘코로나 펜데믹’으로 공포가 극에 달했다. 코로나 확진자도 이젠 아시아를 넘어 유럽이 연일 최고치를 찍고 있고 글로벌 증시는 ‘패닉’상태다. 환율시장은 연일 요동치고 있고 국가간 이동과 교역은 모든게 멈췄다. 유가도 하필 이 시점에서 폭락을 하다보니 전 글로벌 경제 ‘포비아’는 당분간 이어질 듯 하다. 한국은 중국에 이에 이번 코로나 직격탄을 전세계 두 번째로 맞았다.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금융위기와는 또 다른 형태의 경제위기라는 점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는 지구촌에서도 가장 먼저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인건, 현 정부가 코로나 초기에는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전세계적으로 투명한 확진자 검진 방식이나 낮은 치사율, 그리고 방역시스템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게 된다. 그렇다하여 정부는 ‘자화자찬’을 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 컨트롤타워는 환율시장의 안정을 위해 미국과 일본의 통화 스와프부터 챙겨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 일본과 너무나 소모적 경제전쟁을 치뤘다. 지나친 과거의 민족주의에 휘말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은건 허약한 외환경쟁력의 불안감만 남았을 뿐이다. 현 정부의 중국 의존도와 국민적 인식도 분명 바뀌어야 한다. 물론 중국과 교역시장의 규모를 봤을 때 쉽지 않은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과 일본과의 친교를 더 쌓아가며 이에 대한 헷지를 실리적으로 구축 해야한다. 혹자들은 필자를 친미,친일주의라고 평할지 모르겠으나 먹고 사는 문제는 현실이지 감정적 접근이 아니다. 실례로 우리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며 띠여먹힌 돈과 사드배치로 인해 당한 보복성 기회비용 손실만 보더라도 금액은 가히 천문학적 수치였다. 그동안 한반도의 역사를 살펴봐도 일본에 의한 침력과 수탈보다 중국에 의한 만행이 더욱 많았고 시기도 오래 지속됐다. 대중들은 임진왜란만 기억하지 병자호란의 잔인성을 기억하지 않는다. 또 일제식민지 시대를 기억하며 반일주의가 극에 달해있지만 중국의 6.25 개입으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만약, 6.25 전쟁에서 미국이 개입하지 않고 일본의 협조를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김정은 동지를 찬양하는 북한 동포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외교는 현실이다. 국력은 민족주의 감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민낯을 직시해야한다. 언제까지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할아버지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참인가. 물론 아베정부의 반한 정책을 두둔하고자 것은 절대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국수주의적 국제정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채 민족적 감정만 앞세우는 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하여 무턱대고 달려드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세계 각국의 부도 위험지수(CDS)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가뜩이나 수출 교역으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환율시장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게된다. 제2의 IMF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혹자들은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4천억불 이상이라 그리 심각하지 않다라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들어 외국인들의 주식매도세가 심상치 않다. 벌써 10조원이 넘었다. 지난 2008년 MB정부는 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일본과 300억불의 통화스와프를 신속히 체결하며 외환위기를 현명히 대처했다. 이후 2011년까지 700억불로 통화스와프를 증액했지만 현재는 끊겨있다. 우리는 당시 외환위기 사태를 현명하게 대처했기에 이같은 고마움을 모른다.   이젠 부디 중국에 대한 짝사랑을 버리고 일본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원년이 되길 기대해본다. 우리는 일본에게 코로나 방역을 지원하고 일본은 우리에게 통화스와프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것이 기업을 살리는 길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애국이고 지금의 난세를 벗어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