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에 6명 낙마…‘초유 인사참사’

책임총리·창조경제·경제민주화 등 줄줄이 흠집

2014-03-25     김영욱 기자

[매일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한 달을 맞는 25일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전격 사퇴했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이번만 6번째로 박근혜 정부의 인사검증에 구멍이 뚫려도 큰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불통·코드’ 인사가 대형 인사참사로 번졌다는 지적이다.특히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18일)와 김학의 법무부 차관(21일),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22일)에 이어 한 위원장의 자진사퇴는 모두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이 낳은 인재(人災)라는 점에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한 내정자의 자진 사퇴로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과 취임 이후 직접 인선한 후보자나 내정자 6명이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출범 전후로 인사잡음만 13차례 = 당선인 시절 최대석 대통령직인수위원의 중도사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사퇴, 그리고 청와대 비서관의 내정 및 철회 과정 등 매끄럽지 못한 인사까지 포함하면 새 정부 출범 전후로 인사 잡음만 13차례나 된다.

특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1월 29일)→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3월 4일)→황 청장 내정자→김 차관→김 장관 후보자→한 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사퇴 행진은 그야말로 숨가쁘게 이뤄졌다.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로 3명의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에 비해 배 이상이다. 새 정부 출범 전후로 장·차관급 고위관료만 6명이 중도사퇴하는 불명예스러운 진기록을 세운 것이다.특히 장·차관의 무더기 사퇴 행진이 박 대통령이 가장 ‘중하게’ 여기는 ▲책임총리 ▲법과 원칙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등 4개 분야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장·차관 등 고위관료의 줄줄이 사퇴가 인사검증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 향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상당한 피로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자진 사퇴한 이들은 박 대통령이 핵심으로 꼽았던 부처의 수장들로, 심지어는 성접대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끊임없는 도덕성 논란을 야기했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때 충격적이거나 공분을 느낄만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인선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문성과 국정철학의 공유'만 강조하면서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에 소홀하고 국민 여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됐다.김용준 전 후보자의 각종 투기 의혹이나 김병관 전 내정자의 무기중개상 로비스트 의혹, 김학의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 등이 전문가를 기용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검증에서 사고가 난 사례들이다.“같이 일해보고 믿을 만한 사람은 다시 또 기용한다”는 박 대통령의 인사 철학은 그동안 박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던 '코드 인사'의 또 다른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이번에 문제가 된 한만수 내정자도 인선 사실이 발표되자마자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과거 대형 로펌에 근무하면서 국내 대기업과 금융기관은 물론 유명 외국계 기업의 소송업무에 대리인을 맡아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경력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이런 ‘결격 사유’에도 한 전 내정자가 발탁된 것은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창립 멤버로 연구원내 경제민주화팀에서 활동하면서 오랜 기간 박 대통령과 경제 정책 등에서 교감을 이뤄왔다는 점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현재 한 전 내정자와 같은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장관급 인사만 현 정부 들어 5명에 달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두 명이나 되면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인사들에 대한 ‘코드 인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靑 부실한 인사검증이 낳은 인재 = 고위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검증을 담당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제 역할을 하는 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르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다.

한 내정자의 경우에도 언론의 보도를 통해 거액의 해외 비자금 계좌라는 의혹이 나올 정도라면 민정라인에서 충분히 검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이 때문에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을 포함한 민정라인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또 대통령 인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며 새 정부가 청와대 내에 설치한 인사위원회의 구성에 대해서도 재검토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장·차관에 대한 인사는 모두 정무라인에서 하고 있다. 각 수석실에서는 진행상황도 모른다”고 말했다.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인수위 당시 이 위원회에 대해 "대통령 인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공정성이 담보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인사위는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이남기 홍보수석이 고정 멤버이고 사안에 따라 유관 수석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하향식 인사로 인해 검증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사실상 박 대통령의 측근들로만 구성되다 보니 박 대통령이 인선하려는 인사에 대해 ‘노’(No)라고 말하지 못하고 박 대통령의 의중만 살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청와대는 이같은 고위관료의 무더기 사퇴 행렬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인사위원회가 가동되고 있고, 검증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답변뿐이다. 황 내정자의 사퇴 이유가 된 주식 백지신탁은 제도의 탓으로, 김 차관의 성접대 의혹은 사사로운 개인 의혹으로, 김 장관 후보자의 사퇴는 정치논쟁으로 돌렸다.

특히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사후약방문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사퇴한 한 위원장이 국외에서 수년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탈세를 해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나중에야 이를 인지하고 민정라인에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