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부 갑질에 ‘미운오리’ 전락한 면세업계

2020-03-22     전지현 기자
전지현
[매일일보 전지현 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사업’, 면세사업권을 둘러싼 시장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에 면세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며 절규하고 있다. 각국마다 문을 굳게 닫고, 항공사들은 노선 비운항을 결정하면서 운행을 중단하고 있어서다. 한국 면세 역사 약 58년. 1962년 김포공항을 시작으로 국내 처음 들어선 면세점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으로 도약 발판을 마련하며 지금의 위용을 갖추게 됐다. 현재 한국 면세시장 규모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했다. 불과 5년여 전 8조원 규모였던 것에 비하면 짧은 역사에도 가히 칭찬할만한 수치지만, ‘속빈 강정’이란 점이 문제다. 외형은 커졌지만 수익성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면세업계는 롯데와 신라 ‘빅2’ 기업이 차지하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독과점 문제가 거론되며 10년 단위로 자동 갱신됐던 기존 면세점 특허권을 2013년부터 5년마다 입찰하는 방식으로 관세법이 개정다. 이로 인해 2016년부터 신규사업자들의 진출 러시가 이뤄졌고, 좁은 땅안에서 과열된 경쟁으로 결국 신규사업자 일부는 백기투항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나마 인천공항면세점은 ‘상징성’ 때문에 면세사업자들이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공항이 한해 7200만 이용객이 이용하는 ‘한국의 관문’이란 홍보성 때문에 자리다툼이 치열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인천공항이 갖는 상징성을 제외하면, 투자 대비 효율은 공항보단 시내면세점이 훨씬 낫다. 임대료가 주요인이다. 신규사업자들의 잇단 진출로 임찰금액이 덩달아 올라갔고 자릿세도 고공행진한 영향이다. 인천공항 면세사업자들이 낸 임대료는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40% 수준인데, 매출이 줄면 임대료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사이 달콤한 재미를 본 곳은 인천공항공사다. 실제 지난해 인천공항면세점 임대료 총 1조761억원 중 대기업이 낸 임대료 비중은 91.5%(9846억원)에 달했다. 공사는 2018년 국감에서도 ‘엄청난 갑의 위치’라며 외부의 불가항력적 요인이 발생했을 때 입점업체들의 고통을 분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롯데와 중소면세점 삼익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위약금을 내고 철수했다. 인천공항공사 장사가 잘될수록 쏠쏠함을 즐기는 곳 역시 정부다. 정부는 지난해 38개 출자기관으로부터 배당금 1조4382억원을 벌어들였고, 이중 인천공항공사는 가장 높은 배당액을 제공했다. 공사는 2018년 4725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도 3755억원의 배당액을 진행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지난 18일 발표된 ‘코로나19 관련 업종별 긴급지원방안2’에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 면세사업들의 지원이 또 빠졌다. 면세점업체들은 코로나 사태에 인천공항에 면세점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지만, 공사는 ‘정부 방침’을 이유로 뒷짐 지는 모양새다. 면세점시장은 경쟁 심화와 면세업계 전반에 드리워진 영업환경 악화로 사업변동성 위험이 커지는 중이다. 더욱이 코로나 리스크 변수에 마주한 면세업계는 한동안 적자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임대료 인하를 요구한지도 오래됐다. 그만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수익성 악화가 심화되면 면세점 ‘도미노 철수’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말로만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는 정부기조와도 역행하는 셈이다. 대기업이 황금알 시장을 독점적으로 차지한다는 구태의연한 등호는 끝난 지 오래다. 면세점들은 현재 절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면세점 업계가 과거의 영화를 다시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절대적 갑’ 위치에 선 정부와 공사는 수수방관이다. 외부의 불가항력적 리스크가 재발한 현재 상황은 기업들을 개별기업으로 치부하고 뒷짐질 때가 아니다. 황금알 낳는 거위에서 미운오리로 전락한 면세점들의 고통을 분담해 자리라도 지키도록 상생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