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100년 여당은 없다

2021-04-15     송병형 기자
송병형
일본 자민당의 초장기집권은 1955년 사회당의 약진에 자극을 받아 시작됐다. 미군정이 끝나자 일본 제국주의 시절 정치인들이 속속 정계에 복귀했고,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보수 요시다 내각이 밀려나고 민주당 하토야마 내각이 들어섰다. 이어 55년 총선에서 좌우로 분열해 있던 사회당이 개헌 저지선인 3분의 1 의석 확보에 성공하고 바로 재통합까지 이루자 일본 보수 진영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에 보수 자유당은 민주당과 합당해 자민당을 탄생시킨다. 이른바 ‘55년 체제’의 출발이다. 자민당은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 여파로 야당에 정권을 넘기는 93년까지 과반 의석 또는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며 안정적인 집권을 유지했다. 또한 잠시 야당에 넘겼던 정권도 되찾아 제2의 장기집권기에 들어갔다. 자민당 장기집권의 바탕은 ‘성장과 재분배’를 통한 ‘소득 배증 정책’이었다. 자민당은 ‘안보 투쟁’의 격동기를 넘긴 뒤 국민의 소득을 높여 정치적 불만을 무마해왔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자 한국에서는 진보 진영이 일본과 같은 장기집권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최소 20년 집권’을 운운하는 등 장기집권을 공언해 왔다. 심지어는 ‘100년 집권’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당내 행사에서 “이 시대의 천명은 정권 재창출이다.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 전당대회를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가 없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재집권함으로써 실제로 새로운 100년을 열어나갈 기틀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번 4·15 총선을 앞두고도 ‘100년 집권론’을 펼쳤다. 이 대표만이 아니다. 586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선두 격인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총선을 두고 시장·종교·언론 등 기존 패권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종교, 시장, 언론 등 분야에서 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헤게모니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촛불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만이 아니라 언론과 검찰, 재벌 등의 개혁을 제기했던 것이며 이번 총선을 통해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이 원내대표의 말에서는 민주당이 무엇을 장기집권의 토대로 삼을 것인지도 드러난다. 그는 토지공개념, 동일노동 동일임금, 경자유전 원칙 등을 언급했다. 헌법을 개정해 이를 국가적 원칙으로 공식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자민당과는 또 다른 장기집권플랜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이 아니다. 한국인의 국민성은 일본과 다르고, 따라서 한국의 정치도 일본 정치와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은 이승만의 10여년 장기집권을 용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서슬 퍼런 18년 독재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단명한 신군부 독재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우리 국민은 3당 합당으로 217석을 확보한 민자당을 14대 총선에서 심판, 과반 의석 확보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또 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보수 정권에도 진보 정권에도 10년간의 집권만을 허용, 정권교체를 계속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