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가장 먼저 신경 쓰이는 점이 무엇일까? 아마도 기존에 해당 사업을 영위하고 있던 기존 사업자들, 즉 시장 내에 존재하는 경쟁자들일 것이다. 비단 사업뿐만 아니라 한정된 자원이나 영역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경쟁의 장에서는 기존 경쟁자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경쟁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언제나 진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거나, 아니면 신규진입자를 막기 위한 장벽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이나 영역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은 바로 나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의 장은 언제나 신규 진입자에 대해서는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평소에는 이런 신규 진입자에 대해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신규 진입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사(生与死)를 운운하거나, 실제로 생사를 걸고 신규 진입자를 방해하고 막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반응은 인간이 가진 방어적 기제가 본능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주 먼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본능에 아로 새겨진 무의식적인 본능의 발현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한층 복잡하고 다층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행동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체가 이러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게 되었을 뿐이다. 개인, 조직, 기업, 사회단체, 더 나아가서는 국가라는 단위조직까지 신규 진입자에 대한 방어기제는 작동한다.
때문에 이러한 경쟁의 장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진입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정교한 방법론, 즉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의 경우에는 수많은 경영학자들이 가이드라인과 방법론을 제시해 주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의 경영학자인 ‘이고르 앤소프’가 제시한 매트릭스 (matrix)이다. 이는 기업의 성장전략으로 제품과 시장을 기준으로 어느 영역으로 진출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의사결정에 도움을 준다. 앤소프 매트릭스는 시장에서 기존제품으로 경쟁하는 ‘시장침투전략’, 기존 시장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제품개발전략’, 기존 제품을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하여 판매하는, 일종의 시장 세분화 전략인 ‘시장개발전략’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의 영역으로 진출하는 ‘다각화’로 구분된다.
하지만 엔소프 매트릭스가 제시하는 어떠한 전략을 사용하던 경쟁자의 추격과, 기존 영역에 존재하던 경쟁자들의 도전은 별개의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신규 진입자에게 경쟁자는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자원과 영역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자가 신규 진입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신규 진입자가 한정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니 이미 실제 침범하려고 노력하거나 침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경쟁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적이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고 방심하게 만들어 허점을 노리는 방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명확한 학문적 논의와 정의를 제외하더라도,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론을 ‘침투전략(浸湿戰略)’이라는 용어로 쉽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방식은 말 그대로 들키지만 않는다면 언제나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다. 또한 역설적으로 침투전략 자체가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쉽게 정체가 발각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침투전략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점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력을 키워가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는 엄청나게 치명적인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주창한 혁명이론인 진지전(war of position)이 가장 대표적인 침투전략의 대표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람시는 혁명을 위해서는 교육계, 문화계, 종교계 노동계, 사법계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석구석에 요인들을 파견하고, 자연스럽게 사상적인 전파와 정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확실한 사상적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진지전의 전략적 교리와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실제에 적용하기에는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신뢰할만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안졸리나 졸리가 주연한 ‘솔트’라는 영화나, 영국의 유명한 드라마인 ‘더 게임’ 등이 이러한 진지전의 사상에 따라 진행되었던 냉전시대 소련의 침투전략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들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침투전략이 단순히 국제정치나 사상전쟁뿐만 아니라 실제 종교나 문화, 기업 간의 경쟁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다만 너무나도 정교하고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워낙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이 이를 눈치 채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의외로 이러한 침투전략의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침투전략은 의도를 했던 의도를 하지 않았던 간에 종종 일어나는 현실의 방법론일 뿐이다. 어쩌면 전략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확산되어 주도권을 잡아가는 모든 움직임과 혁신의 방법론에 대한 묘사일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주도권 잡기, 즉 헤게모니의 이동에 대한 설명논리라면 무리한 표현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침투전략이 불편한 이유는 나의 인지능력을 무디고 만들고 나의 허점을 노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사이엔가 그렇게 변해 버렸더라라는 상활들이 발생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의 변화와 흐름을 관망하는 일종의 감시타워와 같은 명확한 나름의 기준과 원칙, 그리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