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누가 포스코의 혁신을 막나?
2021-05-17 문수호 기자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포스코가 계열사의 물류 대통합을 위한 물류자회사 설립을 발표하자 해운업계와 운수업계 등 물류 관련 업계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포스코는 해운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해운·물류업계는 이를 거짓으로 치부하고 통행세를 받기 위한 꼼수라며 해운·물류 생태계가 황폐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운·물류업계에서 이토록 반발에 나서는 것은 포스코가 업계 최고의 고객이기 때문이다. 철강제품은 코일 하나가 기본적으로 20~25t에 달하기 때문에 항공운송은 불가능하다. 코일이 아닌 시트(sheet) 방식으로 가공해 수출이 이뤄지더라도 기본적으로 수 t에 이르는 무게는 반드시 선박을 이용한 수출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포스코가 이제껏 물류 통합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대부분 자사 물류회사를 갖고 있다. 유통업계는 물론이고 제조업 쪽에도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와 삼성의 삼성전자로지텍, LG 판토스 등이 있다. 포스코 그룹의 지난해 물동량이 1억6000만t에 이르고, 물류비 규모가 3조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껏 물류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오히려 경악할 일이다.
이는 포스코가 오너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오너가 있었더라면 아주 오래전부터 자체적인 물류시스템을 통한 수익 창출에 나섰을 것이 분명하다.
포스코는 최근 글로벌 철강 시황 악화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 전기차로의 전환에 따른 강재 수요 감소 등 여러 이유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중국과의 불공평 무역에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것도 포스코다. 중국은 한국에 수출할 때 관세를 내지 않지만, 한국 철강기업은 증치세 등 21%의 관세를 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는 또 다른 혁신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포스코는 극한의 원가절감을 통해 수익 측면에 많이 기여했지만, 물류 부문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포스코인터나 포스코강판 등 수출 기업들은 각각 선박을 수배하는 등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물류가 관리돼왔다. 포스코 물류법인은 그룹사 물동량을 관리하는 컨트럴타워 역할을 하는 만큼, 배선 효율화를 통한 원가절감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운·물류업계 입장에서는 분명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들의 반대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몽니가 아닌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포스코가 물류 통합관리 체제에 들어가면 주요 계열사와 끈이 있었던 해운·물류업계는 모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포스코를 상대로 한 물류 담합 사건을 생각해보면 오너가 없는 포스코가 해운·물류업계로부터 손쉬운 표적이 됐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방·CJ대한통운·유성티엔에스·동방·서강기업·로덱스·동진엘엔에스·대영통운 등 8개 업체가 포스코에 무려 18년 동안 9318억원 규모의 사업입찰에서 담합 행위를 이어오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걸렸다는 점은 포스코의 허술한 물류 관리시스템이 좋은 먹잇감이었다는 방증이다.
포스코는 기업시민을 내세우며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운영했던 거양해운도 포기하고 대한통운 등 인수전도 포기했던 만큼, 물류업 진출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공개 선언한 상황에서 쉽사리 말을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포스코인터의 3국 무역량이 상당한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해외 선사에 맡겼던 일감이 국내 기업에 돌아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포스코는 IMO2020을 맞아 선박에 스크러버 장착을 지원하는 등 이미 많은 부분에서 상생에 나서고 있다.
해운·물류업계가 이번 일로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은 분명 불이익이다. 그러나 이번을 계기로 해운·물류업계도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울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