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쪽짜리 패권국들

2021-05-31     송병형 기자
송병형
90년대 시작된 탈냉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세계질서가 재편기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탈냉전기에는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며 이데올로기적 가치대립이 없다는 점에서 과거 미국과 구소련이 대립했던 냉전시대와 다르다’는 게 세계질서의 패러다임이었다. 한국은 이 패러다임에 의존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고 경제적 번영을 이어갔다. 중국은 이 시기 미국을 대체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됐고, 한국 내에서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암묵적인 공식이 지배했다. 하지만 미중 간 신냉전이 본격화되면 이 같은 공식은 작동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래선지 벌써부터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급한 양자택일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이념적 선호나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감정적 호불호에 따른 양자택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는 패권국을 자처하는 미국과 중국의 실상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우리의 앞길을 정해야 한다. 미국은 우리의 전통적 우방이기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들어 ‘미국 중심주의’, 나쁘게 말하면 ‘약탈 국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한국에게는 미국의 안전보장 속에서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내놓을 때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매년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여 미국의 군사 장비를 사주고 있지만,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는 간간히 주한미군 철수설이 나돌며 한국에 겁을 주기도 한다. 자유진영의 나침반 역할을 했던 미국의 위상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로 1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이 와중에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가 터져 나와 전국에서 폭력과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 팬데믹, 경제 위기, 정치적 혼란, 경찰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동시에 미국을 휩쓸며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식이라면 언제까지 세계의 패권국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세계화에 편승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성장동력이 꺼져간다고는 하지만 현재 추세라면 2030년 미국을 넘어서 명목 GDP에서도 세계 1위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중국의 발전은 반쪽짜리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에 이어 권위주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며 민주화까지 달성했지만, 중국은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사회주의 집단지도체제마저 무너뜨리며 1인독재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세계사적 포퓰리즘의 유행과 중국내 반미 정서에 힘입어 일견 중국식 권위주의 정권이 새로운 성공모델이 돼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주화 없이 경제발전이 계속된다면 부의 집중 등 사회적 모순이 언젠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중국이 세계적 패권국을 위한 명분으로 주창하는 ‘인류운명공동체’ 슬로건 역시 허상에 다름없다. 미국 내 유혈 사태를 두고 중국 관영매체 편집장이 썼다는 칼럼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중국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 내 참상을 두고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