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세대의 성과 사랑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젊은이들이 하는 인스턴트식 연애보다 훨씬 진지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의 사랑이나 연애라 하면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나이들어 주책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그들도 사랑의 설레임과 성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젊은이들과 다름이 없다. 김영민 할아버지(67세. 관악구 봉천동)는 신설동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를 오간다. 50세 이상 독신자 모임을 갖고 교앙강좌 및 특별한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는 원우문화센터에 가기 위해서다. 20년째 혼자된 노인들의 휴식처가 되어준 이곳은 노래교실, 서예, 컴퓨터 등 매일 다른 프로그램들로 진행된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단연 매주 토요일 마다 진행되는 ‘만남의 광장’이다. 김씨 역시 매주 토요일마다 참가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김씨는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이 곳에서 만난 하영희 할머니(66세. 용산구 후암동)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처음 문화센터를 찾은 것은 4년 전 부인과 사별한 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마다 노인들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만남의 광장’이 열린다. 김 할아버지는 ‘커플게임’을 통해 하씨를 만나 진지한 열애 끝에 결혼까지 했다. 이곳 문화센터에서는 황혼 재혼을 한 커플들은 120여명이 넘는다. 이벤트에 참가하는 150여명의 노인들은 모두 애인 혹은 배우자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배우자와 이별이나 사별을 겪고 난 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지만 자식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긴다고 토로했다.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주책맞다고 할까봐 말도 못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며 며느리 손잡고 오는 할머니들은 정말 여건이 좋은 경우라고. 그러나 그들의 연애관은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 성생활에 대해서도 당당하다. “여자만 원하면 일주일에 3~4번도 문제없다”라고 김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말했다. 문화센터의 노인들은 재작년에 개봉했던 <죽어도 좋아>를 보고 큰 공감을 했다고. 그것이 “노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실제의 모습이며 느낌” 이라고 말한다.
원숙한 만큼 사랑도 진지하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로터리.이 근처 유명 학원 지하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로 붐비는 성인 무도장이 있다.
어두침침한 분위기. 강남의 화려한 카바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하루 100여명 이상의 노인들이 자주 찾는 이곳의 입장료는 천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반드시 이곳을 찾는다는 최길남 할아버지(67세. 중랑구 면목동)도 이곳에서 춤도 배우고 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젊은 사람들처럼 이성을 보면 사귀고 싶고 연애하고 싶은 욕구는 똑같지만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고.최 할아버지는 “무도장은 퇴폐적이고 음성적인 분위기일 것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문화센터가 문화 활동을 통해 여가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정을 쌓는 장소라면 무도장은 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성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노인복지센터 이관호 회장은 “노인들의 성에 관한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며 젊은 세대와 똑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노인의 자연스런 성욕과 만남에 무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왜곡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인스턴트식 연애보다 훨씬 진지하다.”
독일의 경우 노인의 성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우리 사회와 다르다.
노인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얼마든지 성에 대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부 보수적인 시각도 있지만 나라에서 노인 복지 시설을 운영하여 노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과 노인복지나 노인 성문제에 대한 배려를 해준다는 점이 그렇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독일에서는 노인의 성에 관해 보수적인 사람은 극히 드물 뿐 아니라 노인들은 오히려 신문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광고를 내서 애인을 만들 만큼 노인의 성에 대해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은 젊은 세대와 함께 어울리기를 꺼린다. 왠지 같지 않다는 느낌, 초대받지 못한 곳에 온 느낌 때문이다. 신설동의 무도장을 찾은 김순기 할아버지(가명. 63세)는 “우리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건 바라지도 않고 같이 어울리는 것보다는 노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토로한다. 결국 노인들은 사회에서의 고운 시선으로 봐주기를 포기한 채 그들만의 공감대가 있는 노인 문화센터나 무도장을 출입하며 자기들만의 공간을 통해 존재가치를 느낀다. 몸이 늙었다는 이유 하나만 자신의 성욕을 감추어가며 ‘밀애’라는 방법으로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비뚤어지고 차가운 시선과 열약하고 미비한 노인 문화 공간이 그들을 더 이상 ‘인간’ 이 아닌 ‘노인’ 으로 내몰고 있다. 이 회장은 “먼저 사람들이 이제는 노인들도 똑같이 성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노인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를 꼭 성생활로서만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발산할 수 있도록 사회 복지적 차원에서 동아리 활동의 활성화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양성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 이라고 충고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회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정작 노인들을 위한 정책이나 문화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