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도 무력화" 美 이탈로 탈냉전 질서 떠받친 국제레짐 붕괴 중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후 국제레짐 무력화 코로나 팬데믹 사태 계기 레짐붕괴 가속화 지구촌 차원의 협력 무너지고 리더십 상실

2021-06-07     김정인 기자
도널드
[매일일보 김정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탈냉전 질서를 떠받쳐온 국제규범과 국제레짐의 약화가 뚜렷해지더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레짐의 붕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레짐이란 국가 간 합의로 형성된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규칙을 지닌 제도를 말한다. ▮세계 경제단체들 “WTO 무력화 될 것” 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 세계전망 조사에 따르면, 주요 18개국 대표 경제단체와 국제기구·경제협의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무역질서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특히 응답 단체의 약 절반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유럽연합(EU),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이전 NAFTA 대체 예상),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지역별 경제블록 중심으로 세계무역질서 판도가 재편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가 무력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응답단체의 31.3%는 기존 WTO 중심의 통상 환경이 파괴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미국 내 ‘WTO 탈퇴’ 여론 고조돼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WTO는 끔찍하다. 미국을 망친다”고 비판했고, 지난해부터는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WTO에서 탈퇴하겠다고 압박하는 한편, WTO 분쟁해결기구(DSB) 상소위원 임명 절차 개시를 반대함으로써 올해 초부터 사실상 WTO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당초 WTO 출범을 주도한 것은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5년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은 미국을 위한 거대 시장을 열게 될 것”이라며 WTO 체제를 밀어붙여 세계화 시대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이 불과 20년 만에 미국에 도전하는 패권국으로 부상하자 미국의 분위기는 일변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미중 신냉전 시대가 열리자 미국 조야에서는 ‘WTO 탈퇴’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야당인 민주당조차 WTO 탈퇴 법안을 제출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에 동조하고 있다. ▮美, 기후협약 등 줄줄이 탈퇴 선언 WTO는 출범 이후 세계경제의 틀로서 역할을 해왔다. 경제 분야의 핵심적인 국제레짐인 셈이다. 실제 미국의 WTO 탈퇴가 현실화될 경우 그동안 탈냉전기 세계 질서를 유지해 온 레짐이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미국은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이란과의 핵합의, 파리 기후협약 등을 파기하거나 탈퇴했고, 최근에는 영공개방조약 탈퇴 선언과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결별 선언까지 단행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미국은 기존의 국제레짐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더라도 미국이 국제레짐으로 회귀할 가능성에 회의적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 내 흐름 자체가 이미 변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강대국 간 경쟁과 불신 고도화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강대국 간 경쟁과 불신이 고도화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상황에 대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촌 차원의 협력이 무너지고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도국의 역할을 담당했던 미국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가운데 발생했다”며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이미 강대국 정치, 각자도생의 각박한 국제정세로 인한 초국가적 협력의 유인이 부족했고, 여기에 미중 간 여론전, 심리전 양상으로 새로운 패권경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미중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국제질서는 디커플링(결별)으로 가고, 일부 전문가들이 예견하는 ‘성벽국가’로 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