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본소득은 몽상일까 현실일까
2021-06-09 송병형 기자
#김종인발(發) 기본소득 화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진보의 의제라고 생각돼 온 기본소득 이슈를 보수 진영의 구원투수가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진 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무엇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영향이 컸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지 35일 만에 전체 가구의 99.5%가 수령했다고 하니 사실상 전 국민이 이를 반겼다고 봐야겠다. 실제 정부의 선심성 현금 살포에 부정적이던 사람들의 말이 달라진 모습도 여럿 봤다.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의 성격은 다르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에 충분한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애초 기본소득은 가까운 미래 인간이 AI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나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실제 그런 미래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뜬 구름 잡는 몽상’처럼 느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닥친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마비되는 SF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 되자 기본소득도 더 이상 ‘몽상’이 아닌 ‘현실’이 됐다.
#기본소득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본소득 문제를 ‘현실’의 문제로 인식한 듯하다. 김 지사는 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현재 상황을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구조적 위기”라고 진단하며 “경제가 구조적으로 무너지면 그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서 구조적 대책을 세워야한다. 이미 발생한 현상의 일부를 대증요법으로 완화하는 것은 근본대책이 못된다. 임기응변일 뿐”이라고 했다.
김 지사의 시각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대증요법, 기본소득은 근본대책이다. 그는 전 국민 고용보험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 취업자 고용보험제도다. 취업을 아예 포기한 사람은 대책이 없다”고 했다. 또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고 피할 수가 없는데 자꾸 일자리를 만드는 데 매달린다. 만든다고 만들어지느냐”고도 했다. “AI나 기타 기술혁명 때문에 생산은 느는데 고용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김 지사는 아직 차기주자 중 한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여권 내에서도 대세가 아니다. 같은 날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관련 부처에 “1차 고용안전망인 고용보험의 혜택을 넓혀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하고 고용보험 가입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감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는 계기로 삼아주기 바란다”거나 “한국판 뉴딜을 대규모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삼으면서 특히 어려운 40대를 위한 맞춤형 일자리 정책과 함께 지역상생형 일자리 창출에도 속도를 더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또 “일자리가 최고의 사회안전망”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일자리는 정부가 만들려고 노력하면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이 엿보인다. 김 지사를 제외한 여권 내 차기주자들 사이에서도 고용보험 확대가 대세다. 여권의 주류에게 있어 기본소득은 ‘현실’보다는 ‘몽상’에 가까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