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르는 디지털화폐 시대…기축통화 패권전쟁

디지털위안화가 쏘아올린 불길 디지털달러로 옮겨 붙어 한국 비롯 스웨덴·프랑스 등 중앙은행들 연구개발 속도

2021-06-15     이광표 기자
각국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각국 정부 주도의 ‘디지털 화폐’ 시대가 목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경제 생태계 전반에 비대면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면서 ‘디지털 화폐’ 혁명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중 간의 충돌은 이 가능성에 불을 붙였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2차 무역전쟁으로 확대될 조짐인 가운데 중국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 작업에 열을 올리면서 달러 기축통화 흔들기도 본격화 되는 양상이다. ◆한중일 연합전선까지 노리는 中  중국은 그동안 미국 달러화 패권에 강력하게 도전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는 등 위안화 국제화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위안화를 주요한 기축통화를 만들겠다는 포석이 깔려있는 행보였다. 국제결제시장에서 위안화는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에 이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위안화의 위상은 달러화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실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 4월 국제지급거래에서 위안화 비중은 1.66%에 불과하다. 달러가 43.37%로 가장 높았고 그 뒤는 유로(31.46%), 파운드(6.57%), 엔(3.79%), 캐나다 달러(1.79%) 순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 달러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디지털화폐를 내놨다.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 내 지급준비 예치금이나 결제성 예금과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전자형태로 찍어내는 새로운 화폐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2014년부터 디지털화폐 연구를 시작했고 2016년에는 디지털화폐연구소를 신설하고 비공개적으로 디지털토큰 형태의 디지털화폐 발행 추진을 준비해왔다. 중국은 디지털화폐의 도입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이미 2016년 말 중국 인민은행과 은행들이 참여한 디지털상업어음 거래체제 실험을 실시해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현재는 인민은행과 공상은행, 건설은행, 중국은행, 중국농협은행, 알리페이, 텐센트, 유니온페이 등이 참여해 검증실험 중에 있다. 중국은 당장에는 자국 안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제한적으로 쓸 예정이지만 중· 장기적으로는 무역 결제, 해외 송금 등으로도 용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연합전선 구축 움직임도 엿보인다. 지난 9일 일본 니혼게이자신문은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한중일 3국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동 디지털화폐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국경을 넘는 결제망을 구축해 동아시아의 역내무역을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다. 위안화를 국제화하겠다는 노림수도 담긴 만큼 디지털화폐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전쟁이 더욱 격화하는 모습이다.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도 디지털화폐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웨덴은 소매 결제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인 ‘e-Krona(크로나)'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최근 완료 단계에 있으며, 향후 실제 e-크로나가 도입될 경우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초의 소매용 디지털화폐로 기록되면서 여타 주요국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도 디지털화폐 도입 관련 기술·법적 필요사항을 검토·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은 내 TF 전담팀도 꾸리고 법적 검토를 위한 법률자문단도 출범시켰다. 한은은 다른 나라의 디지털화폐 추진 동향을 바탕으로 필요하면 국내 도입을 위한 제반 준비작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주도권 놓치 않으려는 美 미국도 기축통화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중국의 디지털위안화가 쏘아올린 디지털화페(CBDC) 불길이 미국의 디지털달러로 옮겨 붙고 있다. 지난달 29일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전(前)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이 이끄는 ‘디지털달러 프로젝트’(DDP)는 디지털달러 발행의 당위성을 강조한 백서를 발표해 전 세계 이목을 사로잡았다. DDP는 올 1월 설립된 민간 연구단체다. 백서는 디지털달러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발행해 이를 각 은행이 유통시키는 구조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은행이 시중에 푼 디지털달러는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 기기를 통한 월렛(지갑)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통해 결제·관리가 가능하다. 은행은 기존 달러와 마찬가지로 디지털달러를 상품결제에 국한하지 않고 대출 등 금융상품에 활용할 수 있다. 백서는 특히 디지털달러가 기존 달러 유통 구조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기술을 통한 효율성 도모에 우선하는 등 달러의 위상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사태로 국가보조금이 지급되는 중에 디지털달러가 적용됐다면 소비촉진을 불러와 내수진작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페이스북 가상자산 프로젝트 리브라와 디지털달러의 결합을 점쳤다. 최근 야오첸 중국 증권감독위원회 과학기술감독국 국장은 리브라2.0 프로젝트와 디지털달러의 긴밀한 협업을 예상했다.  백서에서 거론한 것처럼 디지털달러 발행에 막대한 인프라 조성이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발행 기반을 다진 페이스북에 도움의 손길을 보낼 수 있다는 예상이다. 리브라 발행에 목매고 있는 페이스북에겐 더 없이 좋은 시나리오다. 이번 백서 발표 이전 미국 정치권에선 CBDC 발행이 이슈로 작용한 바 있다. 지난 2월 제롬파월 연준 의장은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요구한 질문에 CBDC 발행을 검토하는 중이라 밝혔다. 레얼 브레이나드 연준 이사도 언론을 통해 분산원장기술 등 CBDC 활용방안을 연구하는 중이라 언급했다. 중국 디지털위안화 발행이 달러 패권을 위협한다는 목소리에 적극 반응한 것이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현금에 대한 수요가 일정부분 유지되고 있어 현금 없는 경제에 대비한 디지털화폐 도입이 시급하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향후 주요국에서 디지털화폐 발행 및 사용이 보편화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